집안에 상(喪)이 있어 며칠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장례식장에서 한참을 분주히 일하다 손님을 배웅하려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였습니다. 이십 대 친척 여자아이가 제 옆에 와서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잘 도와주시더니 왜 지금은 치우는 걸 안 도와주세요? 손님들이 계속 오니 계속 도와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순간 ‘엄마뻘 되는 어른한테 이런 말을 하네. 당돌한 아이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당시 안에는 장례식장 직원들도 있고, 일손이 많아 제가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주신 손님들을 잘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손을 보태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럽고 기분이 상하려 했습니다. 저는 손님을 배웅하는 중이었다고 설명하려다 변명처럼 느낄 것 같아 얼른 상 치우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하늘 어머니시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 제게 항렬로는 손녀뻘인 친척은 이틀 동안 손님들을 맞이하고 챙기느라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이쪽저쪽을 오갔습니다. 하루 종일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어 제가 먼저 다가가 다독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 일하느라 거른 끼니를 뒤늦게 때우는지 컵라면을 먹고 있는 친척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 더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해. 피곤했을 텐데 부지런히 손님 챙기느라 수고 많았어.”
친척은 깜짝 놀라 이제 가시냐며 멋쩍게 인사했습니다. 먼저 손을 내미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 들어서는데 그 친척이 반갑게 저를 맞이했습니다.
“어제 제가 버릇없이 말해서 죄송해요. 속상하셨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음이 기특했습니다.
“아니야. 네가 이틀 동안 얼마나 애썼는지 다 봤는걸. 남편한테도 칭찬했어. 나이도 어린데 일을 참 잘하고 손님 대접도 잘한다고.”
친척은 재차 미안함과 감사를 전하면서 추운 날씨로 차가워진 손을 녹이라고 따뜻한 물을 종이컵에 담아 제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포근한 솜이불처럼 마음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듯했습니다. 어머니 교훈을 실천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사랑이 식고 각박한 시대, 세상살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어머니 사랑이 담긴 언어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사랑으로 채워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용기 주시고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