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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2024.02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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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동네 아저씨들의 말만 믿고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원양어선을 탔습니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굴에 기름 마를 날 없이 일하면서 빠르게 갑판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랐지요.

    제가 태어난 이후로도 망망대해를 오가는 아버지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집에 맡겨진 저는 일 년에 두어 번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집채만 한 원양어선이 방파제에 접안하는 날, 아버지는 각종 먹거리와 선물을 양손 가득 들고 나타났습니다. 엄마도 없이 사촌들 사이에서 눈칫밥 먹던 저는 아버지가 잠깐 집에 머무는 사이 온갖 호사를 누렸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운동화 대신 유명 브랜드 신발을 신고, 만져볼 일이 거의 없는 용돈도 후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멀리했습니다.

    “어디 우리 딸, 손 한 번만 잡아보자.”

    안쓰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저는 “싫어요!” 하며 할머니 등 뒤로 숨었습니다. 차곡차곡 모은 월급봉투까지 다 내놓고는 김치 한 접시에다 약주를 들이켜던 아버지는 한숨만 푹 내쉬었습니다.

    굵직한 손가락, 새까만 얼굴, 무성한 머리숱에 짙은 눈썹을 가진 마도로스는 아버지라기보다 그저 일 년에 두어 번 기쁨을 주는 데면데면한 아저씨나 삼촌 같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저를 드센 사촌들 틈에 구박덩어리로 내버려 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미웠습니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이 “너는 왜 엄마가 없어?”, “너네 아버지 생선 잡는다며?” 하고 놀림조로 하는 말이 너무 싫고 창피해 큰소리치곤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외국 왔다 갔다 하는 큰 배 선장님이시거든? 엄마는… 잠깐 없는 거거든?”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제가 한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습니다. 친구들에게 거짓말하게 만든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도, 어쩔 수 없이 어린 자식과 떨어져 바다로 나가고 딸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원망과 미움만 받던 아버지의 나이가 됐습니다. 제가 나이를 따라가는 만큼 늙으신 아버지는 더 이상 원양어선을 타지 않지만 여전히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대청도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자그마한 선박의 선장님으로요.

    가까이 살아도 아버지와 만나기는 여전히 일 년에 두어 번이 다였습니다. 제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부터 일 년에 두어 번은 이삼 년에 두어 번으로 바뀌었습니다.

    손끝이 시려 손가락을 연신 비벼대며 열을 내야만 했던 추운 겨울날, 오랜만에 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3년 만에 본 아버지는 주름도, 흰머리도 늘었습니다. 손에는 어선의 기계를 만지면서 밴 검은 기름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할아버지, 손 안 씻었나 봐. 할아버지한테 냄새도 나.”

    철없는 딸이 할아버지를 보고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이게 다 영광의 훈장이다.”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옷에 손을 닦아냈습니다.

    “할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제가 혼내자 아이는 “내가 뭘” 하면서 입을 삐죽였습니다.

    “내 손이 좀 더럽지? 기름이라 그런지 아무리 씻어도 빠지질 않네. 그래도 이 기름 덕분에, 이 바다 비린내 덕분에 내 동생들 그리고 너까지 다 먹여 살렸다.”

    손녀 대신 저를 보고 멋쩍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버지, 요즘 조업은 어떠세요?”

    “그냥저냥 밥벌이할 정도지, 뭐. 작년까지만 해도 새벽 일찍 일등으로 출항해서 저녁 늦게 꼴찌로 귀항했는데 나도 많이 늙었나 보다. 우리 손녀딸 대학 등록금이나 벌어줘야지 하고 사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언젠가 대청도 동네 아저씨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 아버지, 몸은 저래도 조선 시대 태어났으면 장군감이야. 어디 가서 지질 않아. 조업량도 일등이어야 되고 조업 시간도 일등이어야 되는 사람이라고. 성질은 또 얼마나 불같은지, 가족 욕하는 거랑 남한테 지는 거는 절대 못 참아.”

    가족을 위해서 언제나 일등이 되어야 했던 아버지가 이제 일등이 힘들다고, 그마저도 미안한 기색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평생 일등만 하고 살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래야만 해. 나는 형이고, 오빠고, 아빠니까.”

    아버지는 나이가 들고 몸이 힘들어도 가장이라는 짐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 저 아버지 손 한 번만 잡아봐도 돼요?”

    “기름 묻어 지저분한 손 잡아서 뭐 하게. 껄껄껄.”

    놀란 눈을 하고 그리 말하면서도 아버지는 연신 손을 옷자락 끝에 문질러댔습니다.

    “뭐 어때요, 내 아버지 손인데.”

    손을 저에게 내밀고 아버지가 또 멋쩍게 웃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손은 마디마디 관절이 휘고 엔진 열기에 입은 화상, 연장에 긁힌 자국으로 온통 흉터투성이였습니다. 흉터 하나하나, 관절 마디마디를 천천히 어루만졌습니다.

    “아버지 감사해요.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손으로 저 풍족하게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작 아버지 손 잡아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해요.”

    사십여 년간 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으면서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죄송하기는 무슨. 내 자식 내 품에서 키우지 못하고 눈칫밥 먹인 게 나한테는 평생의 한이고 죄인걸. 내가 미안하다. 이 애비가 미안해.”

    서로에게 미안하다며 우는 부녀를 딸아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내 어릴 적, 커다란 산과 같았던 아버지는 키가 160센티미터에 몸무게도 50킬로그램이 안 나갑니다. 그 작은 체구로 육 남매와 가족 전체를 든든하게 지켰던 것입니다.

    “사실 나는 바다가 제일 무서웠어. 시커먼 바다 한가운데를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언제 저 안으로 빨려 들어갈지 몰라서 두려웠다.”

    한평생 두려운 바다와 싸우며 가족 모두를 지켜내신 나의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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