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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사랑하는 첫아이

2024.02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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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가 됐습니다. 기뻤습니다. 나의 첫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는 엄마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로 먼저 들어가야 했습니다.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을 보내고 집으로 온 아이는 6개월 즈음부터 아토피에 시달렸습니다. 다행히 돌이 지나면서 아토피는 말끔히 나았습니다.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아토피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이의 건조한 두 뺨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갈라진 뺨은 빠르게 짓물러 갔고 아토피는 두 뺨에서 눈가로, 턱으로, 목으로 범위를 점점 더 넓혀갔습니다. 온 얼굴과 목은 벌겋게 짓물러서 성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쉴 새 없이 흐르는 진물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참기 힘든 가려움에 잠을 못 이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진물 탓에 달라붙어 버린 아들의 얼굴과 베개 사이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얼굴처럼 제 마음도 같이 짓물러 가는 것 같았습니다.

    활발하고 밝던 아들은 점점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싶었습니다. 제가 몹쓸 유전자를 물려주어 아들이 아픈 것 같아 죄스러웠습니다. 큰아들을 살피느라 신경을 못 쓴 둘째와 셋째에게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큰아이의 치료를 위해 아토피를 잘 본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사방으로 찾아다녔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의원에서 누가 아토피를 완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5시간을 한달음에 달려가 밤새 건물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대구 어디 병원이 잘한다더라, 전주 어느 병원이 좋다더라 하는 말에 전국 팔도를 가리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아들은 잦은 장거리 이동으로 지쳐갔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 아들과 상의한 끝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치료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집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걸리는 지역의 한의원에서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수요일마다 아들과 한의원으로 가 치료를 하고 약을 받아 왔습니다.

    아토피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로 아들은 밀가루, 인스턴트 식품은 물론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 항생제 먹인 육류와 계란, 우유조차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어 매일 도시락을 싸갔습니다. 한창 성장할 시기에 과도하게 음식 조절을 한 탓에 아이는 성장이 멈춘 듯 또래보다 왜소했습니다.

    환경도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소량의 먼지에도 가려움을 호소해 집은 항상 먼지 한 톨 없도록 청결을 유지했습니다. 이불은 이틀에 한 번, 베개는 매일 세탁하고 햇볕에 소독했습니다. 진물을 닦느라 늘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은 날마다 삶았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 수련회 등 단체활동은 전혀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황사가 있는 날, 꽃가루 날리는 날, 비가 와 습도가 높은 날, 심지어 햇볕이 강한 날에도 아들의 피부는 뒤집어졌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성실히 학교에 다녔습니다. 아토피의 극심한 고통을 알아버린 아들은 알아서 식단을 조절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조차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줄곧 병원을 오가면서도, 까다로운 식단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싸면서도, 매일매일 청소하고 세탁을 하면서도, 학교생활과 치료를 열심히 하는 아들, 큰아들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배려하는 둘째와 셋째, 곁에서 묵묵히 지원해 주는 남편이 고마워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2년이 지나면서 아들의 아토피는 차도를 보였습니다. 진물 딱지로 두껍게 덮여 있던 피부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서서히 정상적인 빛을 띠었습니다. 가려움도 줄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아토피와 싸운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식에 마침내 깨끗한 얼굴로 섰습니다. 군대도 무사히 다녀와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고요. 3년간의 혹독한 치료와 관리 덕에 더 이상 음식을 가려먹거나 환경 관리를 하지 않아도 예전처럼 아토피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지금은 서로 고생했다며 그때 일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저희 가정은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날 큰아이를 돌본 시간은 하늘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고스란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던 것처럼 하늘 부모님께도 당신의 호흡으로 낳은 자녀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기쁨이었을 겁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플 수 없음에 안타깝고 그저 아이를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고 가슴 아팠듯 하나님께서도 영적으로 아파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고통스러우셨을 테지요.

    사망의 불치병을 고쳐주시려 저를 관심의 전부로 여겨주시고 사랑해 주신 하늘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 영혼이 더 이상의 잔병치레 없이 튼튼한 믿음으로 천국까지 갈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아픈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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