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농사지은 들깨로 짠 기름과, 여러 밑반찬을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셨습니다. 택배가 도착한 날, 택배 기사님이 박스 안에서 뭔가 샌 것 같으니 한번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박스를 뜯는데 들기름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반찬을 담은 봉투는 들기름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요. 신문지에 돌돌 말린 들기름 병이 깨진 탓이었습니다. 기사님은 원래 병류를 택배로 부칠 때 더 신경 써야 한다며 처음 물건을 접수받은 곳에서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잘못이기도 하니 배상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기사님이 돌아가고 시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외출한 시어머니 대신 전화를 받은 시아버지께 택배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사정을 말했습니다.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에어캡으로 병을 한 번 더 감싼 후에 택배를 보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던 시아버지는 애초에 병이 깨지지 않도록 잘 포장해야 했었다며 배상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대답으로 저를 놀라게 만드셨습니다.
“너희 어머니한테는 그냥 택배 잘 받았다고만 말하고 병이 깨졌다고는 하지 말거라. 너희 어머니가 들으면 얼마나 속상해하겠니. 다음에 보낼 때는 내가 더 주의하마.”
저는 당연히 시아버지께서 병이 깨진 일과, 다음부터는 더 꼼꼼히 포장해야 한다는 당부까지 그대로 시어머니께 전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속마음까지 염두에 둔 시아버지의 배려는 제 생각보다 한층 더 깊은 듯했습니다. 시아버지처럼 배려하고 산다면 가족끼리 마음 상할 일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얼마 뒤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간이 안 좋은 아들을 위해 간에 좋다는 들기름을 짜려고 일부러 들깨 농사를 지었다며 아들이 한 숟갈씩 꼬박꼬박 먹도록 챙겨주기를 부탁하셨습니다. 들기름 병이 깨지기는 했지만 마침 지난번에 받고 아직 남은 들기름이 떠올라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마쳤습니다.
그동안 저는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꼭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실수하듯 상대방도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는 배려와 관용이 원만하고 신뢰감 높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비결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배려와 관용을 겸비한 인품을 갖출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 방법이 어머니 교훈에 다 제시돼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주는 사랑, 바다같이 넓은 마음, 형제자매 칭찬하기 등이 바로 그것이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어머니 교훈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려 합니다. 하루를 마칠 때는 어머니 교훈의 모든 항목을 잘 실천했는지 되돌아보고요. 꾸준한 노력과 성찰로 하루하루 하나님을 닮아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