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자매님에게 빌려준 책을 돌려받았다. 책 안에는 손바닥 크기의 엽서 한 장이 꽂혀 있었다. ‘빌려줘서 고맙다, 내용이 좋다’로 시작해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작은 엽서에 촘촘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찬찬히 읽은 후 옷장 깊숙한 곳에서 두툼한 종이 가방을 꺼냈다. 그동안 받은 편지들을 모아놓은 편지 보관함이자 추억 회상함이다. 종이 가방에 엽서를 넣으려다 말고 뒤죽박죽 쌓인 편지 뭉치를 방바닥에 와락 쏟아냈다. 꺼낸 김에 차곡차곡 정리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사실 다이어리나 편지, 사진은 웬만한 절제력 없이는 꺼내보기 힘든 ‘주의 대상’이다. 일일이 읽다 보면 어느새 추억 속에 빠져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겠지’ 하며 조금 빛바랜 편지를 손에 들었다.
같은 반 친구, 대학 동기, 교회 자매님… 고등학교 때부터 모아온 편지의 발신인들은 참 다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이 뜸한 친구들의 편지는 왠지 모르게 낯간지럽고 민망했다. 청년부 자매님들의 편지에는, 지금보다 더 철없었을 내게 보내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학생부 시절, 당시 학생이던 자매님들이 서툴기만 했던 내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보내온 편지들도 그랬다. ‘머리가 잘 어울린다’, ‘자기 글씨는 못났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마저 아름다운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했다. ‘그땐 그랬지’ 하며 웃다가도 나를 응원하는 문장과 마주치면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뭉클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꺼내 읽는 편지들인데도 신기하게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글에 자꾸 마음이 가고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종일 곱씹어 읽고 싶을 정도로.
생각해보니 살면서 좋은 글만 받지는 않았을 테지만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온통 좋은 글뿐이었다.
‘내가 쓴 편지들도 누군가에게 두고두고 읽고 싶은 편지면 좋겠다.’
한바탕 추억 회상을 마치자마자 내가 쓴 편지들이 떠올랐다. 내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써왔다는 사실에 만족하다 특별한 수신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영혼의 부모님, 하늘 아버지 어머니셨다. 하늘 부모님께 썼던 편지는 어땠을까. 날마다 올렸던 기도라는 편지는 또 어땠을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장 28절) 하신 말씀을 이유로, 아버지 어머니 앞에 갖은 투정과 괴로움의 짐을 던지듯 내려놓기 바빠 감사와 위로의 편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날마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의 편지도 하나하나 읽어주셨을 하늘 부모님의 사랑을 마음에 오롯이 담아,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편지를 올리려 한다. 두고두고 읽어도 또 읽고 싶어지는, 넘치는 감사와 잔잔한 위로의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