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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4분의 기적 上

2020.1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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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복잡한 거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있다. 황금 같은 점심시간에 저러고들 있는 것을 보니 큰 구경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냥 지나치려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단순한 구경이 아니었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신고는 한 건가? 구급차가 출동하더라도 번화가라 차가 막힐지 모르는데… 그러면 10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그냥 두고볼 수 없었다.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가 얼른 손목의 맥을 짚었다. 맥이 잡히지 않았다. 어깨를 쳐 봐도 반응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가까이에 서 있는 아저씨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빨리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아저씨가 재빨리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계속 맥을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쓰러진 지 얼마나 됐어요?”

    “2분 정도 된 것 같아요.”

    누군가 대답했다. 다행히 시간이 많이 지나지는 않았다.

    ‘아직 얼마 안됐으니까 가능성이 있어.’

    똑바로 누운 자세로 환자의 자세를 교정한 다음 가슴 중앙에 깍지 낀 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손바닥 뒤쪽에 체중을 실어서 깊이 압박했다. 하나, 둘, 셋, 넷… 스물아홉, 서른.

    다음으로 기도를 확보해야 한다. 얼굴을 한쪽으로 돌려 입이 벌어지게 하고 두 손가락으로 입속의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했다. 목에 뭐가 걸려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서둘러 이마를 뒤로 젖히고 턱을 위로 끌어올려 기도가 열리게 한 다음 환자의 코를 막고 입을 크게 벌려서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후욱! 후욱!”

    다시 흉부 압박.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그저 외칠 뿐이었다.

    ‘제발… 제발….’


    #2
    엄마는 의사였다. 아빠가 없어도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저명한 대학교수이자 의사. 그런 엄마를 둔 나에게 사람들이 거는 기대는 컸다.

    “규현이, 너도 의사 해야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었다. 멋모를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커갈수록 듣기 싫어졌다. 사람들이 짜놓은 드라마의 각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대로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엄마를 보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흥미가 없어졌다. 엄마는 항상 병원 일로 바빴다. 끊임없는 수술 일정, 돌봐야 할 환자들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어쩌다 쉬는 날이라도 엄마는 낮잠 한 번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바쁠 때 나에게 신경을 제대로 써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면서 내 위주로 모든 일들을 결정하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내가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함께 가주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온갖 재료를 사다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별로 고맙지 않았다. 그저 평상시 잘 못해주니 쉬는 날이라도 해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엄마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의사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딱 맞아떨어졌으니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언젠가 엄마가 이모에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의사라는 직업이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저렇게 남 살리느라 자기 삶도 없이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마다하고 싶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나는 점점 반항아가 되어갔다. 걸핏하면 외박을 하고(어차피 엄마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많으니까) 용돈이 궁할 때만 엄마를 찾았다. 엄마의 눈빛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을 꾹 누르고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3 여름방학이었다. 수능 준비로 방학도 없는 고3이라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은 지 오래였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동해로 놀러가기로 했다.

    “너희들끼리 위험하지 않겠니?”

    엄마가 말린다고 안 갈 내가 아니었다. 엄마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대꾸도 안 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용돈을 요구했다. 엄마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엄마 돈 많이 벌잖아. 의사 엄마가 그것도 못해줘?”

    “규현아!”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가만히 있었다. 엄마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지갑을 열어 돈을 꺼냈다.

    “물놀이할 때 조심해라.”

    ‘내가 뭐 어린앤가.’

    2박3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마지막 날, 우리는 아쉬워서 더 기를 쓰고 놀았다. 수영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어 해안에서 제법 멀리까지 나가 수영을 하던 나는, 물속에서 갑자기 몸이 뻣뻣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쥐가 난 것이다.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허우적거리느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한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헤엄쳐오는 것이 보였다.

    ‘조금만 버티면 돼!’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더 이상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힘들었다. 몸이 물속으로 잠겨들어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차갑게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대로 죽는 건가?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 위였다. 밤인 듯 창밖은 어두컴컴했다. 내 손 위에 누군가의 손이 덮여있었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엎드려 있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친구들은 어디 간 거지?’

    내 기척에 엄마가 깼다.

    “이런, 깜빡 잠이 들었네. 너, 괜찮은 거니?”

    “애들은요?”

    “집으로 보냈다. 친구들 부모님들까지 걱정시켜드릴 수는 없잖아.”

    언제 어떻게 온 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보다는 엄마 말 안 들어서 이렇게 된 것 같아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다음 날, 귀에 익은 목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등 너머로 누군가 서 있었다.

    누굴까? 나를 살려준 사람인가? 그렇다면 나도 일어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몸을 번쩍 일으키고 싶었지만 상황을 좀 더 살펴보려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직 어린 학생이 심폐소생술을 어디서 배웠니?”

    학생? 나를 구해준 사람이 학생이라고? 나는 실눈을 뜨고 고개를 약간 틀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을 엿보았다. 정말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키도 작은 남학생이 나를 구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 소방안전교육을 받았거든요. 의사가 꿈이라 그때 열심히 배우기는 했는데 실전에서 써먹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한 번 배운 걸 이렇게 잘 활용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내 가족 살리기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강사님이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시더라고요.”

    학생의 말을 듣고 있던 엄마의 눈이 커졌다.

    “그 수업을 들은 거니?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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