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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따뜻했던 시인의 유고 시집 上

2020.1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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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햇살 따갑던 늦더위가 물러나고 장마 비도 그쳤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눅눅하다. 어수선한 기분, 오랜만이었다. 아내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깔끔한 정장을 권했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옷장 구석에 걸어둔 갈색 코트를 걸쳤다. 게임 용어를 입에 달고 살던 고등학생이 시를 써보겠다며 대학 실기 시험장에 들어서던 15년 전 그날과 같은 차림이었다.

    “뭐야. 좋은 날 왜 혼자 분위기 잡으실까?”

    둥근 안경에 긴 생머리,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수첩을 탁탁 치며 걸어오는, 내 동생 영하였다.

    “왔냐.”

    “아침에 올케 언니가 전화했어. 오빠가 왜 낡은 코트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자리도 아니고 아버지 유고 시집 출판기념회에 꼭 이런 낡아빠진….”

    영하는 얼굴을 찡그린 채 나를 위아래로 훑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잔소리가 길어지기 전에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기자들은 많이 온대?”

    “당연하지. 김용민 시인이 직접 김도완 시인의 유고 시집을 발표한다는데. 우리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 다 온다고 그랬어. 내일 자 신문 1면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김도완 시인. 나의 아버지다. 얼마나 유명하냐고 묻는다면,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아는 시인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열에 아홉은 ‘김도완’이라 답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유명했다. 학기마다 국어 교과서를 받으면 문학 부분 첫 작품의 작가가 ‘김도완’이었다. 많은 평론가가 김도완 시인의 시를 평가했고, 학생들은 시에서 화자는 누구며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어디인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달달 외워야 했다.

    #2
    사람들이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보는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도완 시인의 시에서는 따뜻한 인류애가 느껴진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본 김도완 시인은 그다지 인류애가 넘치는 분이 아니었다. 인류애는 무슨.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용돈도 쥐꼬리만큼 주는데….

    하루는 아버지에게 정말 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시를 쓰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뿔테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시는 참 특별해. 산문과는 다른 매력이 있지. ‘삶’이라 써도 어떤 사람은 ‘사랑’이라 읽고 어떤 사람은 ‘고독’이라 읽으니 말이야.”

    삶, 고독, 사랑…. 간지러운 말도 서슴없이 하는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열아홉 살 나에게는 무거운 주제이기만 했다. 내게는 태어날 때부터 ‘김도완 시인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래서인지 교내 글짓기 대회나 청소년 백일장이 열리면 내 펜 끝으로 관심이 쏠렸다. 아버지를 닮아 글솜씨가 남다를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저 돌멩이는 무슨 맛일까. 먹어보고 싶다.’

    이런 이상한 문장을 적어도 친구들은 “우아. 정말 심오하다”면서 박수를 보냈다. 이유는 ‘김용민’이 시를 잘 써서가 아니라 ‘김도완 시인의 아들’이어서였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자작시를 낭독하고 간단한 해설을 말해보라 했을 때, 기대에 차 있던 친구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물론 이지혁은 빼고.

    모두가 박수 칠 때, 지혁이는 맨 뒷자리에서 낄낄댔다. 유일하게 내 비밀을 아는 친구다. 내 비밀이란, 김도완 시인의 아들, 그러니까 ‘김용민’은 문학과 거리가 한참 멀다는 사실이다. 새벽 감성에 젖어 펜을 드는 것이 아니라 날이 새도록 PC게임에 빠져 있는, 장기라고는 게임밖에 없는 수험생이라는 것. 문학적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숨길 의도는 없었다.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나를 볼 뿐이었다. 지혁이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친하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색안경을 쓰지 않은 것이고.

    “야! 김용민. 오늘 저녁에는 꼭 들어와라. 공부도 안 하면서 어제 게임 접속도 안 하고 집에서 뭐했냐?”

    “너야말로 대학 간다는 애가 공부 안 하냐?”

    ‘공부’라는 단어에 놀란 지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혁이 눈은 작고 옆으로 찢어져서 꼭 도화지에 그어놓은 밑줄 같다. 평소에 잘 안 보이던 지혁이의 동공과 마주하니 영 어색했다.

    “너 김용민 맞냐? 너랑 9년을 지냈지만 네 입에서 공부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본다.”

    “하! 그냥 요즘 고민이 많아. 다른 애들은 대학 간다고 다 공부하는데…. 난 나중에 뭐하고 사냐.”

    대학교. 내 인생과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친구들이 입시 준비에 전념할 때, 나는 게임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공부해야 하는 나이”라는 말은 억압과 강요로 느껴졌고 나는 그 억압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라 생각했다. “게임이 밥 먹여주냐”는 핀잔도 여러 번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른들의 지겨운 잔소리로만 들렸으니까.

    하지만 학창 시절 끝자락에 선 지금, 그렇게 흘려들었던 말들이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 곧 성인이 된다는 것이 두렵고,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친구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내가 미웠다.

    “넌 좋겠다. 공부 잘하니까 대학 골라서 갈 수 있잖아.”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고르는 대학이지.”

    지혁이 농담에 피식 웃음이 났다. 지혁이도 호탕하게 웃더니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앞이 안 보인다고 주눅 들기에는 우린 아직 젊잖아.”

    그렇다. 우리는 아직 젊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나이에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딪히고 흔들리면서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 아닐까.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걸을 수 있어 새삼 다행스러웠다.

    #3
    고3에게 여름방학은 보충수업이라는 명분하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반강제적인 자습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자습 중간에 이름이 불리는 학생은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했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용민이는 문예창작과 지원할거지?”

    “아뇨. 딱히 정해둔 과는 없어요.”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담임 선생님이 흠칫 놀랐다. 선생님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두꺼운 책 사이에서 성적표를 꺼냈다.

    “성적이 낮은 게 걱정이었구나?”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이 차례로 정리되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감추고 싶은 지난 시간들이 훤히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던 선생님이 껄껄 웃으셨다.

    “걱정 마라. 문예창작과는 실기 시험이 중요하니까. 너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거야. 세계적인 예술가들도 공부는 못했다고 하잖니.”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내 진로는 문예창작과로 결정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대학 입시 자료와 책상에 있던 고급스러운 만년필을 내 손에 쥐여주셨다. 기대가 크다는 응원 섞인 부담과 함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주머니 속 만년필만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영하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다.

    “용민이 왔냐? 오늘은 좀 늦었네?”

    “선생님하고 진학 상담하느라 늦었어요.”

    진학이라는 말에 아버지도 흠칫 놀랐다. 선생님과 같은 반응이었다. 내가 아무리 공부와 거리가 멀었어도 이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다. 아버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구나. 이제 곧 대학에 원서를 접수해야 하는 기간이니까.”

    아버지가 옆에 앉아보라며 손짓했다. 선생님이 챙겨준 입시 자료를 챙겨 아버지 옆에 앉았다.

    “그래서 결정은 했니? 어떤 학교, 어떤 학과에 지원할지?”

    “그게… 선생님이 문예창작과가 어떠냐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활짝 웃었다. 두꺼운 뿔테 안경 옆으로 눈주름이 번졌다. 누가 봐도 뿌듯한 표정이었다. 아버지도 내심 기대했던 것일까. 화려한 성적표는 받아오지 못해도 교내 백일장에서 줄곧 상을 탔으니. 아버지는 내가 대견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뭔데?”

    “솔직히 ‘시’가 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쓴 시만 봐도 단어도 어렵고, 내용도 심오한데…. 저는 자신 없어요.”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용민아, 이 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장미꽃 한 송이. 아버지의 질문이 꽤 진지했기에 머릿속에서 멋있는 말들을 뒤적여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었다.

    “붉은 꽃잎과 푸른 줄기가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롭네요.”

    아버지는 크게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역시 재능이 있구먼! 그래, 그런 표현도 좋아. 하지만 가슴이 아닌 손끝에서 나오는 말의 기교에 너무 집중하면 시의 맛을 잃게 된단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려한 말과 은유로 잔뜩 포장한 것이 시가 아닌가? 최대한 멋지고 폼 나는 단어를 열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이 장미를 보면 우리 영하가 생각나. 오늘 영하가 아빠에게 준 선물이거든.”

    “아, 어쩐지. 웬 꽃인가 했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붉은 꽃잎과 푸른 줄기가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장미꽃일지 몰라도, 아빠에겐 특별한 꽃이지.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꽃집에서 문득 아빠 생각이 나서 샀다고 하니 얼마나 기특하니.”

    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장미꽃이 조금 달라 보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 냉랭하던 딸이 선물한 장미꽃 한 송이. 아버지에겐 얼마나 감동이었을까.

    “시란 그런 거야. 마음으로 쓰는 것. 같은 꽃 한 송이를 소재로 삼아도 너만의 이야기를 담는 거지. 화려한 단어와 기교는 장식에 불과해.”

    역시 김도완 시인이다. 장미 한 송이로 시를 설명하다니. 아버지의 시를, 어쩌면 아버지를 가볍게 여긴 것이 죄송스러웠다.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라 붙잡을 수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김도완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적 배경과 화자를 분석하고 외우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어야 했다.

    “갑자기? 뭐가 죄송해. 너 뭐 잘못하고 숨긴 거 있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시들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아서요.”

    “허허. 이 녀석이 아빠를 부끄럽게 만드네. 괜찮아. 아빠는 우리 아들이 시를 써보겠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구나.”

    아버지가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 품에 안겼다. 포근하고 널찍한 아버지의 품. 따뜻하면서도 사뭇 외로움이 묻어나는 냄새. 그리웠던 냄새다.

    “그래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겠지?”

    아버지는 책장에서 시집을 몇 권 꺼내오셨다. 당신의 시집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시집도 있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권씩 필사하기! 숙제다.”

    “이걸 언제 다 써요? 너무 많아요.”

    “남들 입시 공부하듯이 매달려봐. 간절하게. 필력이 날로 쑥쑥 오를 거다.”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실은 든든한 지원군이 생겨서 행복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서 당분간은 펜을 잡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시를 쓰기 위해서.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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