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희
병원 치료차 광주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친정 시골집에 들러보고 싶었습니다. 올봄 내내 오빠가 정성 들여 가꿔 지난 휴일에 거둔 감자를 가져가라는 큰언니의 전화가 있기도 해서요.
지금 친정 시골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거동이 어려워진 엄마가 몇 해 전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 뒤 종종 오빠네가 와서 빈집을 손질하고 텃밭을 가꿉니다.
시골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저만치 쪽마루가 보였습니다.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을 것을 달라는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야옹거리는 그곳에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아직도 엄마가 마루에 앉아, “막둥이 왔냐?” 하며 부르실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엄마가 가꾸던 텃밭에는 오빠네의 손길이 닿아 있었습니다. 얼기설기 엮인 호박 넝쿨, 요 며칠 내린 비에 쑥쑥 자란 상추, 줄줄이 심긴 브로콜리, 양배추…. 갖가지 채소들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눈은 즐거웠지만 무언가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창고에는 오빠네, 언니네, 고모까지 모여 캤다는 감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여름내 야무지게 여문 감자들이 행여나 썩을까 널찍하게 펴놓고 볶아 먹을 자잘한 감자만 한 움큼 집어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어쩐지 많이 챙겨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안방, 마당, 장독대, 뒤꼍… 이리저리 둘러보다 휴대폰을 들고 엄마가 머물던 자리들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혹시나 엄마와의 그날이 오더라도 그리움의 흔적은 간직하고픈 마음이었습니다.
엄마의 자취가 점점 사라져 가는 시골집은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엄마가 계셨다면 지금쯤 풋고추 한 다발, 양파 한 망, 감자도 한 박스 챙겼겠지요. 저는 우렁찬 목소리로 “엄마, 잘 먹을게. 또 올게!” 인사하며 집을 나섰을 테고요.
빈집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가슴에서부터 눈까지 차오르려는 먹먹함을 꾹 참았습니다. 고향은 엄마의 품과 같지만 엄마가 계시지 않는 고향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엄마가 없는 시골집에서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행복한 추억과 기억들을 꺼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