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필은 2024년 12월호 ‘내 고향 글과 사진전’ 응모작입니다. 분량상 별도로 수록합니다.
최헌침
#1
5월의 어느 따사로운 봄날, 방과 후 반 친구들과 한바탕 축구를 한 나는 허기진 배를 안고 논두렁길을 달렸다. 붉은 명자꽃이 만발한 울타리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봉당에서 뭔가를 하고 계셨다.
“아부지, 뭐 해요?”
나는 호기심에 당장 아버지께로 다가갔다.
“어… 여기 오면 안 돼!”
아버지가 다급하게 제지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멈칫 섰다.
“벌 조심해!”
벌이란 말에 움찔 자라목을 하고 주위를 살피니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마을 동무들과 땅벌집을 건드리며 놀다가 땅벌에 쏘여도 봤고 호박꽃잎을 오므려 호박벌을 잡으려다 엄지손가락을 쏘인 적도 있어서 벌이 얼마나 위험한 곤충인지 잘 알던 터였다. 나는 살금살금 마당을 가로질러 멀찌감치 마루 한편에 앉았다.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벌들이 어지럽게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툇마루 위에 몸통만 한 통나무를 놓고 열심히 진흙을 발랐다. 벌통이었다. 속이 빈 통나무로 만든 벌통은 바가지로 덮여 있었고 하단에 나란히 뚫린 작은 두 구멍으로 벌들이 바삐 들락날락거렸다.
“아부지, 그게 뭐예요?”
“꿀벌통이란다. 아부지가 너 꿀 먹게 해주려고 사 오셨대.”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며 대신 대답했다. 멀찌감치 꿀벌통을 바라보는 엄마도 나처럼 찌푸린 표정이었다. 앞으로 얻을 벌꿀의 달콤함보다 꿀벌과 함께 살아갈 걱정이 더 컸나보다. 그렇게 꿀벌과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2
우리 집 꿀벌은 ‘한봉’, 즉 토종벌이었다. 한봉은 양봉(서양꿀벌)에 비해서 몸집이 20퍼센트쯤 작다. 그만큼 혀의 길이도 짧아서 주로 꿀샘이 얕은 다양한 야생화로부터 꿀을 모은다. 특정한 꽃의 개화기에 맞추어 장소를 옮겨 다닐 수 있고 일 년에 여러 차례 꿀을 뜰 수 있는 양봉과 달리, 한봉은 이동이 불가능하고 일이 년에 한 번만 꿀을 뜰 수 있다. 그만큼 진하고 숙성된 꿀맛을 내고 수확량이 현저히 적어 더욱 귀했다.
꿀벌과의 동거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두 마리라면 어떻게 친해지려고 노력하겠지만 수만 마리나 되는 벌과 일일이 친해질 수 없으니 그냥 조심조심 다닐 뿐이었다. 벌은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지만, 내가 아무리 조심히 움직인다고 해도 벌이 위협을 느끼면 공격을 받았다.
벌통이 툇마루 한편에 입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루를 청소하던 엄마의 빗자루질을 적의 공격으로 오해한 꿀벌 한 마리가 엄마의 팔을 쏘았다. 엄마의 팔뚝이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다. 벌통을 처음 들여온 날부터 몇 번이나 쏘였는지 모른다. 벌통 주변에는 항상 벌 여러 마리가 맴돌았고 분주히 마당을 가로질렀다. 마당이나 마루, 심지어 방 안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길을 잃거나 가출(?)한 벌들이 배회했다. 꿀벌과의 동거에는 언제든 벌에게 쏘일 수 있다는 긴장감과 각오가 뒤따랐다.
그해 여름방학, 무더위에 뒤척이다 잠이 들던 찰나였다.
“아아악!”
불시에 커다란 주사를 맞는 듯한 통증이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 나는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았다. 벌에 쏘였음을 직감했다.
“발바닥 쏘였어!”
무더운 여름밤 방에 불을 켜놓으면 모기나 나방 등 온갖 곤충들이 찢어진 창호지나 문틈 사이로 들어오기 일쑤다. 그래서 매일 잠자리를 펴고 모기장을 치기 전에 살충제를 뿌리는데, 그날은 꿀벌 한 마리가 어쩌다 모기장 안까지 침투했던 것이다. 발은 곧 팅팅 부어올랐고 나는 통증에 훌쩍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발은 더욱 퉁퉁 부어 있었고 오른쪽 발을 땅에 디디면 통증이 느껴져 걸을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동네 아이들과 물놀이도 못 하고 운동장에서 축구도 못 하니 화가 치밀었다. 나는 집에서 절뚝거리며 벌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3
벌통이 생긴 이후 내게 하나의 임무가 맡겨졌다. 천적들로부터 꿀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보통 밤에 전등 불빛으로 모여드는 소충나방(꿀벌부채명나방)을 잡았고, 낮에는 꿀을 훔치러 오는 양봉이나 꿀벌을 공격하는 말벌을 쫓아냈다.
보다 본격적인 임무는 다음 해 5월, 따뜻한 봄날에 주어졌다. 꽃이 만발하여 유밀이 풍성해지는 봄이 오면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한다. 겨우내 먹을 꿀과, 어린 벌이 먹을 화분(花粉)을 채취해 올 일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봄여름 동안 일벌의 수명은 약 한두 달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왕벌의 산란은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된다. 여왕벌의 산란으로 봉군(蜂群, 벌떼)의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면 벌통은 점점 비좁아진다.
이때 여왕벌은 새로운 왕대를 만들어 새 여왕벌들을 낳고 자신은 일벌의 약 70퍼센트를 데리고 새집을 찾아 떠나는데, 이를 ‘분봉’이라 한다. 꿀벌을 키우는 입장에서 분봉은 벌통의 수를 늘릴 기회다. 하지만 여왕벌에게 새집을 바로 제공하지 않으면 여왕벌은 수만 마리의 일벌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기 때문에 분봉의 조짐을 재빨리 알아채는 게 중요했다. 아버지는 새 벌통, 바가지, 고운 모래 등 분봉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해 놓고 내게 분봉의 조짐을 설명해 주었다.
자연적 분봉은 대개 5월이나 6월에 일어나서,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은 집에서 벌통을 지켜보고 있을 틈이 없었다. 오전에는 할아버지가 오셔서 벌통을 지켜주셨고 오후 당번은 나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벌통을 지켜보는 일은 열 살인 내게 지루한 고역인 동시에 중책이었다.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면 벌통 하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시켰다. 방과 후 축구를 하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은 참기 어려웠지만 막중한 책임감으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마루에 걸터앉은 나는 혹 여왕벌을 놓칠까 두려운 마음에 벌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공차기 소리와 동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마음은 이미 학교 운동장으로 가 있지만 참아야 했다. 벌통을 지켜보며, 날이 흐려지거나 빨리 해가 서산에 걸리기만을 기다렸다.
#4
며칠 후 아침, 아버지는 오늘 날씨가 아주 좋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벌통을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밭으로 나갔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논두렁길을 내달려 커다란 은행나무를 지나 명자꽃 만발한 집 마당에 들어섰다. 할아버지가 유심히 벌통을 관찰하고 계셨다. 과연 평상시와는 움직임이 좀 달랐다. 벌통 주변에 벌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움직임이 바빠졌다. 아버지가 설명해 준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여 가서 애비 불러와라!”
할아버지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가방을 마루 위로 냅다 던져 놓고 아랫마을의 밭을 향해 달음질쳤다. 개구리들이 깜짝 놀랄 틈도 없이 빠르게 논두렁길을 내달렸다.
“아부지! 아부지!”
아버지가 멀리서 나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얼른 뛰어왔다. 아버지와 함께 논두렁길을 거슬러 집으로 달렸다. 벌통 입구로 쏟아져 나온 벌들이 이미 어지럽게 마당을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수는 점점 많아졌고 마당은 여왕벌의 비행을 재촉하는 수만 마리의 벌떼와 ‘위잉위잉’거리는 요란한 소리로 가득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이쪽저쪽에서 벌떼를 향해 모래를 던지기 시작했다. 나도 자리를 잡고 모래를 던졌다. 곧 벌통에서 날아오를 여왕벌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왕벌이다!”
아버지가 소리쳤다. 우리는 더욱 세차게 모래를 던졌다. 정신없이 수만 마리 벌떼를 향하여 모래를 던지는 사이, 벌들이 가까운 대추나무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여왕벌이 대추나무에 내려앉은 것이다.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바가지 안쪽에 꿀을 바르고 내게 건넸다. 나는 바가지를 들고, 사다리를 챙겨 대추나무로 향하는 아버지를 따랐다.
대추나무를 들여다보니 나뭇가지에 일벌들이 여왕벌을 중심으로 뭉쳐 동그랗게 떼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대추나무 가지에 걸고 봉구(蜂球) 가까이 올라갔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빗자루처럼 묶은 쑥을 한 줌 건넸다. 쑥 향이 벌들을 얌전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아버지는 바가지를 봉구 가까이 대고 쑥으로 천천히 벌들을 쓸어 넣었다. 그 많던 벌들이 바가지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조심조심 사다리를 내려온 아버지는 바가지를 들고 툇마루에 미리 준비된 새 벌통으로 갔다. 아버지는 다시 쑥으로 벌떼를 벌통 안에 쓸어 넣으며 바가지를 뚜껑 삼아 그대로 벌통 위에 덮었다. 통나무 속에 봉군이 안착됐다. 벌통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아버지는 바가지와 통나무 사이 틈을 진흙으로 발라 메웠다.
임무 완수! 아버지의 칭찬과, 아버지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새 벌통을 바라보니 마음에 다시 그늘이 졌다. 이제 벌통이 두 개다. 두 배로 많아진 꿀벌과의 동거라니! 상상하기 싫었다. 뒤늦게 밭에서 돌아온 엄마도 나와 같은 심정인 듯했다. 웃지만 웃는 것 같지 않았다.
#5
분봉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해가 서쪽 하늘로 기울 즈음, 아랫집에 사는 한 학년 위의 형이 털레털레 와서 우리 집 마당을 기웃거렸다.
“야, 아까 그거 뭐 한 거냐?”
“우리 집 벌이 새끼 쳤다. 그래서 새 벌통이 생겼어, 볼래?”
나는 자랑하듯 형에게 새 벌통을 보여주었다. 그리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늦은 오후라 일벌의 활동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수벌들이 몇 마리 눈에 띄었다. 나는 보란 듯이 수벌 한 마리를 맨손으로 낚아챘다.
“야, 쏘이면 어쩌려구!”
맨손으로 벌을 잡는 나를 본 형이 기겁을 하고 소리쳤다.
“헤헤, 괜찮아. 수벌은 침이 없거든.”
“오! 그래?”
형은 그 말에 용기가 생긴 듯 벌통 가까이 다가가 자신도 수벌을 잡아보려 했다. 벌들은 형을 이리저리 피하며 곧 벌통 안으로 숨었다.
“어라? 이것들이!”
탁 탁 탁. 갑자기 형이 가지고 있던 작대기로 벌통을 몇 번 두드렸다. 숨은 수벌들을 다시 불러내려는 의도였다.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얼어붙었다. 곧바로 벌어질 일이 너무 무서웠다. 나는 숨을 죽이고 벌통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형이 한 차례 더 벌통을 두드렸다.
“이러면 수벌이 많이 나오겠지? 흐흐흐.”
그때였다. 갑자기 벌통에서 벌 몇 마리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형에게 덤벼들었다. 침이 있는 일벌이었다. 갑작스러운 일벌의 공격에 소스라치게 놀란 형이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일벌 몇 마리가 형의 뒤를 쫓았다. 형의 비명소리는 멀어져 갔고 나는 밀랍인형처럼 굳어서 성난 꿀벌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살금살금 마당을 빠져나와 형의 집으로 갔다. 잔뜩 울상이 된 형은 벌에 쏘인 머리와 손을 어루만지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내게도 화가 났는지 본척만척했다.
“형, 그렇게 벌통을 두드리면 어떡해!”
“내가 이럴 줄 알았냐? 수벌은 침이 없다며!”
“수벌에 침이 없다고 했지, 내가 언제 벌통에 수벌만 있다고 했어?”
“이제 다시는 너네 집 안 갈 거야!”
형은 잔뜩 화난 얼굴로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뒤돌아선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집으로 올라갔다.
#6
겨울이 다가왔다. 꿀벌들은 월동에 들어가 잠잠해진 지 오래였다. 해 질 녘에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훈훈한 안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펼쳐진 담요 속에 손발을 넣고 앉았다. 따뜻했다. 몸을 녹이고 있는데 아랫목 구석에 커다란 대야가 눈에 띄었다. 대야 위에는 각목 받침 위에 보자기가 덮인 시루가 놓여 있었다. 콩나물인가 싶어 보자기를 살짝 들어 안을 들여다봤다가 깜짝 놀랐다. 시루 안에는 걸쭉한 꿀을 머금은 벌집이 수북했다. 반짝이는 짙은 갈색의 벌꿀이 시루에서 대야로 줄줄 흘러내렸다. 살짝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내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니던 두 형과 누나가 겨울방학이 되어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다른 날보다 더 많은 반찬이 올라간 밥상 앞에서, 그동안의 이야기들로 웃음꽃이 피었다. 저녁상을 물린 뒤 아버지가 아궁이에서 화롯불을 담아 오고 엄마는 광에서 고구마와 가래떡을 내어 왔다. 고구마는 화롯불 재에 묻고 그 위에 걸친 석쇠 위로 흰 가래떡과 쑥 가래떡을 올렸다. 가래떡이 노릇노릇해질 즈음 엄마가 꿀이 듬뿍 담긴 접시를 들고 왔다.
“얘들아, 이거 우리 벌통에서 뜬 꿀이다. 떡에 찍어 먹어 봐라.”
우리는 살이 터가며 속까지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가래떡을 하나씩 들고 꿀에 찍어 먹었다.
“와, 꿀맛이다.”
“그럼, 꿀이 꿀맛이지.”
“하하하!”
꿀이 점점 바닥을 보여 형들과 누나가 눈치를 보며 조금씩 찍어 먹을 즈음, 엄마가 꿀차를 타 왔다. 나는 그 참에 엄마에게 꿀을 더 달라고 했다.
“아이구…. 이제 꿀 그만 먹어. 외갓집에 갖다줄 꿀밖에 없어.”
“좀 더 먹고 싶은데.”
“그래, 우리 막내가 벌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좀 더 갖다줘라.”
아버지의 말에 괜히 으쓱해졌다. 이때다 싶어 그간 벌들과 벌인 무용담을 형들과 누나 앞에서 다시 늘어놓았다.
#7
우리 집 벌통은 3개까지 늘어 몇 년 동안 나를 힘들게도 하고 아프게도 했지만 겨울이 되면 우리 가족을 달콤하게 해줬다. 겨우내 떡을 꿀에 찍어 먹고 꿀차를 마시노라면, 화창한 봄날 벌통 앞을 지키며 투덜댔던 불만과 무더운 여름밤 징그러운 소충나방을 잡던 수고는 물론 몇 번이나 벌에 쏘였던 고통마저도 눈처럼 사라졌다.
야속하게도 겨울방학은 끝을 향하고, 쌀과 밑반찬 보따리를 잔뜩 집어 든 형들과 누나가 집을 나섰다. 나는 괜히 딴청을 피우며 작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형들과 누나를 떠나보냈다. 아랫마을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도 됐지만 행여 눈물이 쏟아질까 봐 따라나서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혼자 조용히 집을 나섰다. 땅거미 지는 황혼의 논두렁길, 개울 건너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다 그만 울컥 목이 메었다.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온기가 빠진 쓸쓸한 방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나를 꼭 안아주었다.
명자나무가 꽃망울을 틔우는 따사로운 한낮, 꿀벌들이 기지개를 켜고 비행을 시작한다. 엄마와 나도 새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