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대입 준비를 할 때 대학 진학보다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생긴 나는 대학 입학을 보류했다. 남들이 다 대학에 가는 나이에 다른 길을 걷겠다는 막내딸의 단호한 결정에 부모님은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내가 2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으로 향한 것은 어쩌면 부모님에게서 느껴지는 슬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 대학에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아빠는 내 양손을 붙잡고 어떻게 그런 고마운 생각을 했냐며 세상 행복하게 웃으셨다.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신기해하며 내내 즐거워하셨다. 온 집안 친척들의 축하가 줄을 이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진학이라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흐름을 깨 모두를 걱정시켰던(?) 아이가 이제야 제자리에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의 표현 같았다. 난 지극히 정상적으로 전문적인 일을 하며 평범한 청년의 시기를 보내왔는데 말이다. 책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내게 주어진 자유를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이제 대학에 가야겠다 결정했을 뿐인데 다들 얼마나 고마워하시던지….
입학식 날, 부모님은 당신들이 신입생이라도 된 듯 기뻐하며 참석하셨다. 엄마는 너무 들뜨고 긴장한 나머지 일시적인 몸 상태의 변화까지 겪으셨다. 막내딸까지 대학을 졸업시켜야 어미의 역할을 완수한 것이라는 모종의 사명감을 지닌 엄마에게 막내의 대학 입학은 노화된 신체의 흐름까지 바뀌게 할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나 보다. 가족들의 들뜬 기분과 달리, 당사자인 나는 언니들처럼 누구나 부러워하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고 창피할 뿐이었다.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아서 그런지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좋았다. 과제와 시험으로 늘 조급하긴 했어도, 지나온 20대의 삶을 조곤조곤 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교우들은 다들 내게 잘해줬다. 여학생들은 언니라고 살갑게 부르며 친절했고, 학과 대표 선배를 비롯한 남학생들도 누나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챙겨줬다. 난 그저 내 나이가 많아 그러는 줄 알았고, 뻔뻔하게 그런 대접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한참 뒤에서야 내가 특별 대접을 받았던 이유를 알게 됐다.
수업이 없는 일요일, 학교 밖에서 과 대표와 그 친구들을 우연히 마주쳤다. 인사를 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모친 이야기가 나왔다.
“누나, 제가 누나께 특별히 잘해드린 이유가 있어요. 누나 어머니께서 입학식 날 제게 찾아오셔서 부탁하셨거든요. 누나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대표인 제가 잘 챙겨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이런 부탁을 하시는 어머님은 처음이었고, 너무 특별히 부탁하셔서 제가 잘해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과 대표는 특유의 입담으로 엄마가 어떤 단어를 사용해 어떤 어조로 말했는지 제스처까지 취해가며 설명했다. 솜방망이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어린 시절 학년이 바뀔 때 담임 선생님께나 했을 부탁을, 어떻게 곧 서른이 되는 딸의 대학 입학식에 와서 과 대표 학생에게 할 수 있을까. 당신의 논리대로 과 대표를 설득하셨을 엄마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어르신의 부탁대로 친절을 베풀어준 순박한 과 대표 동생이 고맙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 엄마라는 무한한 비단보 안에 고이 싸여 있는 아이같이 느껴졌다.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지만, 엄마는 내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가방과 옷, 신발을 사주셨다. 엄마는 막내딸의 대학생 시절을 너무너무 사랑해 주셨고, 내가 언니들과 대학을 비교하며 기죽을까 봐 끝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다.
대학에 가면 뭔가 좀 더 알게 될까 싶었는데, 알기는커녕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라는 현실만 깨달았다. 다만 엄마를 더 깊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대학 생활은 내게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서양사 강의에서 연세 많으신 교수님께 “교수님, 사랑이 뭡니까?” 하고 질문했다. 내가 원하던 내용이 아니었는지 교수님의 답변은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그 문제를 고민해 내린 결론은 ‘엄마’였다. 한없이 나를 품어주는 존재, 아무리 불러도 부족한 호칭, 그 자체가 이름이 되어버린 이름, 엄마.
엄마라는 거대한 바다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20대와 30대의 경계에서 대학생으로서 경험한 엄마는 신비로운 헌신이었다. 동화 속 나라가 이보다 신비로울까. 40대에 접어든 내가 대면하고 있는 엄마는 어떤 세계일까. 엄마, 그 환상적인 세계는 나를 영원의 어머니께로 더욱 온전히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