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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2023.0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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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흘리개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다섯 식구 살길이 막막해졌다.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을 구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퇴근하면서 먹을거리를 보따리에 싸 왔다. 그 안에는 땅콩과자 등 새콤달콤한 간식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직장 내 매점이 없어 간식이 궁한 직장 동료들을 상대로 먹을거리를 팔았다.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직원 휴식 공간 한 모퉁이에 펼친 좌판의 이윤이야 뻔했지만 엄마는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재래시장을 들러 고구마나 제철 과일을 사서 양손 가득 들고 왔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고구마를 쪄서 통에 담고, 출근 준비하랴 아침 밥상 차리랴 분주하게 움직이고, 그날 판매할 간식거리를 머리에 이거나 양손에 들고 걸어서 출근했다. 이틀에 한 번씩은 시장에서 달달한 과자 종류를 구입하기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집을 나설 때나 귀가할 때나 엄마의 손에는 항상 무거운 짐이 들려 있었다. 고단한 어깨는 축 늘어진 채.

    간식이 다 팔리는 날은 거의 없었다. 팔다 남은 간식들은 눅눅해져서 다음 날 팔 수도 없었기에 우리 세 자매의 몫으로 주어졌다. 세 끼니를 겨우 해결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간식이나 과자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터라, 우리는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엄마의 귀가를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나면 인사도 없이 손에 든 보따리만 잽싸게 낚아채서 풀기 바빴다. 철부지 딸들의 눈에는 늘 부어 있는 엄마의 두 다리와 피곤에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자녀들이 뭐가 예쁘다고 엄마는 그처럼 억척같이 사셨을까.

    결혼하기 전 엄마는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한의원을 운영한 외할아버지 덕택에 큰 기와집에 살면서 꿈 많은 여고 시절을 보냈다. 학업 성적이 좋아서 대학 진학도 고려했지만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결혼 후 세 딸의 엄마가 되고 가세가 기울어 생활의 풍파를 겪으면서 여리고 앳되던 엄마는 생활 전선에 투입된 전사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삶의 원동력은 세 딸을 향한 강한 모성애였으리라.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아 새로 구한 직장에서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상사로 마주쳤을 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을 텐데 엄마는 자녀들 생각에 자존심도 다 털어버렸다. 곱상한 여학생은 간데없고 고된 노역과 씨름하는 옛 제자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을 담임 선생님의 마음도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철인같이 강하던 엄마가 이제는 우리 세 자매 곁에 아주 작은 거인으로 머물러 있다. 긴 세월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몰랐던 것에 죄송스러우면서도 아직 우리와 함께해 주어 감사하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해본다.

    “엄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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