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통나무가 쿵 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다리가 풀린 곰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자 비버는 통나무를 노려보다가 곰에게 말합니다.
“이제 저기 있는 통나무를 다 옮겨주세요. 여기에 차곡차곡 쌓으면 됩니다. 제가 지켜볼 테니 게으름 피울 생각은 하지 마세요!”
비버의 다그침에 곰은 멀리 있는 나뭇더미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킵니다.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곰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비버가 근처에서 땅을 파는 산양과 눈이 마주칩니다. 산양이 더 바쁘게 땅을 팝니다.
“거기 산양 씨, 안전모는 똑바로 써야죠. 턱 끈 꽉 매고.”
비버는 자기 안전모를 툭툭 치면서 소리쳤습니다. 산양은 뿔 때문에 안전모가 불편했지만 풀어두었던 끈을 당겨 겨우겨우 걸어 잠급니다.
현장 감독 비버가 나타나기만 하면 모래 포대를 이고 가던 물소도, 부리로 못을 박던 딱따구리도, 배수로를 파던 두더지도 더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현장을 다 둘러본 비버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앞다리에 찬 완장을 쓰다듬으며 말합니다.
“역시, 현장은 내가 있어야 제대로 돌아간다니까!”
백 년 넘은 떡갈나무가 자라는 숲속에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아주 강력한 태풍으로 집들이 거의 부서지고,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전까지 이 마을의 동물들은 서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태풍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아무도 숲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동물들은 마을을 재건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마을을 이끌던 부엉이 영감님과 멧돼지 할머니는 집 짓는 재능을 가진 동물들을 일꾼으로 선별했습니다. 총감독은 비버로 정했습니다. 비버 집안은 대대로 목공 장인일 뿐만 아니라 건축 일에도 능숙해서 이 일에 적임자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마을 정비가 시작됐습니다. 동물들은 무너진 집들의 잔해를 치우고 땅을 고르고 나무를 베어 옮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은 예전 모습을 되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자기밖에 몰라요. 실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함께 일하기엔 영 아니에요.”
“딱 한 번 나무를 잘못 잘랐다고 엄청 나무라는 거 있죠? 그때 말고는 실수를 안 했는데 자꾸 지난번처럼 잘못 자른 게 아니냐며 의심을 한다니까요.”
“마을에 목공소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거기에 일을 맡기는 거지, 만약 다른 목공소가 있었다면 아무도 비버에게 일을 안 맡길걸요?”
동물들에게 둘러싸인 부엉이 영감님과 멧돼지 할머니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부엉이 영감님이 직접 공사 현장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비버가 부엉이 영감님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영감님! 어쩐 일로 현장까지 오셨습니까?”
“마을을 위해 고생하는 일꾼들 격려차 왔네.”
“고생이라뇨. 마을의 새 역사를 쓰는 귀한 일을 맡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버는 웃으며 부엉이 영감님을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비버의 눈에 산양과 토끼가 들어옵니다. 둘은 한쪽에서 땅을 파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토끼는 땅을 파는 게 아니라 산양 옆에 앉아 심하게 부은 발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부엉이 영감님이 토끼에게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호통이 들립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저기 산양은 열심히 일하는 거 안 보여요?”
비버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토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땅을 파던 산양도 흠칫 놀라 앞발질을 멈췄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다들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설렁설렁 일하면서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대우를 바라는 건 기본이 안 된 태도예요!”
“죄, 죄송합니다. 발이 너무 아파서….”
“변명하지 마세요. 다른 동물들도 다 참고 하잖아요. 게으름 그만 피우고 빨리 일어나서 일하세요.”
토끼의 말이 듣기 싫다는 듯 앞발을 휘휘 저으며 비버가 자리를 떠납니다. 토끼는 앞발을 절름거리며 산양 옆으로 갑니다. 주위에 있던 동물들이 긴 한숨을 내쉬지만 비버는 관심이 없습니다. 부엉이 영감님이 이 광경을 유심히 봅니다.
#2
“제가 현장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니요!”
비버가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부엉이 영감님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부엉이 영감님이 동물들의 고충을 비버에게 이야기하던 중이었습니다.
“자네가 열정적으로 일해주니 고맙네만, 다른 일꾼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모른 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감님은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좀 다그쳤다고 그러시나 보군요. 별일도 아닌데 그만한 일로 감독직에서 끌어내리겠다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비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엉이 영감님 주변을 맴돕니다.
“제가 없으면 현장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으세요?”
딱!
부엉이 영감님의 부리 소리에 일순간 사방이 고요해졌습니다. 비버도 걸음을 멈추고 영감님을 바라봤습니다. 부엉이 영감님이 부리 소리를 내는 이유는 중대한 일을 발표하거나, 누군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을 때 훈육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영감님은 비버를 바라보며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자네가 일꾼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사소한 문제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충분히 자네를 해임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자네가 끝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말이야.”
“무,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뭘….”
“마을 책임자의 권한으로 자네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주겠네. 한 달 뒤에도 자네가 바뀌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네.”
비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두를 위해 자네가 실천해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겠네. 한 달 동안 잘 따라준다면 해임은 없었던 일이 될 거야. 할 수 있겠나?”
말을 마친 영감님은 쪽지 하나를 써서 비버에게 건넸습니다. 비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습니다. 그리고 부엉이 영감님이 내민 쪽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다음 날, 비버는 여느 날처럼 일찍 현장에 나갔습니다. 누구보다 이 일에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비버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비버는 긴 한숨을 쉬며 부엉이 영감님이 현장을 떠나기 전에 남겼던 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한 달간 자네를 지켜본 후, 계속 감독직을 맡길지 결정하겠네. 나는 자네가 잘하리라 믿네. 그리고 그동안 완장은 내가 잘 보관해두겠네.’
목공 장인으로 이름을 알린 후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 적이 없던 비버였습니다. 자부심이 큰 만큼 남에게 고개 숙일 필요도 없었지요. 비버는 자기가 일꾼들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도 그들에게 일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동물들을 가르치려면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오히려 동물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감독직을 내려놔야 한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비버는 주머니에서 어제 영감님이 주고 간 쪽지를 꺼냈습니다. 영감님의 요구는 간단했습니다.
비버는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이 숙제를 하지 못하면, 한 달 뒤 현장 감독 비버는 더 이상 없을 테니까요. 그때 현장으로 들어오던 토끼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제 일 때문인지 토끼는 비버를 보자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쭈뼛쭈뼛 뒤로 물러났습니다.
비버는 인사도 하지 않는 토끼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영감님의 부탁을 생각하며 꾹 참았습니다.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토끼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도 일찍 나와 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비버는 겨우 인사를 끝냈습니다. 목이 막히고 혀가 꼬이는 느낌이었지요. 부끄러워진 비버가 토끼의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황급히 자리를 피합니다. 토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얼 잘못 본 것처럼 비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조회 시간에 비버는 부엉이 영감님의 당부를 생각하며 일꾼들에게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입가에 경련이 날 만큼 미소를 머금고요. 조회는 마쳤지만 일꾼들은 모두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감독님이 왜 저러죠? 어디 아픈 걸까요? 원래 저런 분이 아니잖아요?”
힘이 제일 센 물소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슴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때, 시설 부장인 딱따구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말합니다.
“무슨 소리야, 원래 얼마나 착하고 좋은 분인데. 오늘은 유달리 기분이 더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제랑 많이 달라서요. 계속 웃는 것도 그렇고.”
동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갑니다. 그날 이후 비버는 확실히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이따금씩 불같이 화를 내기는 했지만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를 띠었거든요.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오전부터 현장을 돌며 이것저것 간섭하던 비버가 점심시간이 돼서야 사무실에 돌아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비버는 그제야 억지 미소를 짓느라 부르르 떨리는 입가를 매만지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비버는 영감님과 약속한 한 달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습니다.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해도 일꾼들은 여전히 자신을 불편해했으니까요. 점심을 대충 때우고 비버는 다시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늦가을 햇살이 드는 곳에서 잠깐 낮잠을 자는 동물도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버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산양의 안전모는 여전히 턱 끈이 풀려 있었고, 곰의 안전 조끼는 꽉 끼어서 옆구리가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물소는 추위를 피해 아직 사용하지 않은 자재를 깔고 앉아 있었고요. 비버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일보다 일꾼을 먼저 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세 번째 숙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죄, 죄송합니다.”
비버가 고개를 돌리니 딱따구리가 토끼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수레에서 쏟아진 흙더미와 벽돌이 널브러져 있고 그 아래 도면이 깔려 있었습니다. 일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비버도 급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