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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두 손의 화해

2023.1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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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고, 머리야!’

    요즘 정민이의 머리가 자주 아픕니다. 왼손과 오른손 때문입니다. 왼손과 오른손 사이가 틀어진 뒤부터 뭘 해도 자연스럽지 않고 일이 더딥니다. ‘한 몸 선발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러면 예선 통과조차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머리가 눈, 코, 입, 귀, 어깨, 손, 발과 함께 출전 결의를 다질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손발이 잘 맞고 즐거웠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정확히는 2주 전 저녁 식사 준비를 하다 일어난 사고 이후부터입니다. 그때, 감자를 깎으려고 왼손이 감자를 쥐었습니다. 오른손은 감자 칼을 집어 들었고요.

    “아얏!”

    감자를 깎던 칼이 왼손 검지 손톱과 살점을 베고 말았습니다. 상처 난 손가락에서 피가 났습니다. 발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재빨리 움직이고, 눈은 구급상자를 찾고, 오른손은 상처 부위를 압박했습니다. 그동안 왼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상처 난 검지가 너무 쓰라리고 아파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겨우 피가 멎고 반창고를 붙인 다음 어찌어찌 식사 준비를 마쳤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입은 먹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었습니다. 새살이 돋고 손톱도 자랐습니다. 그런데 왼손 마음에 난 상처는 그대로였습니다.

    ‘오른손이 조심했다면 내가 다치지 않았을 거 아냐?’

    왼손은 오른손에게 너무 서운했습니다.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섭섭한 감정이 이렇게 오래가지 않았을 텐데 오른손은 왼손이 다친 이후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른손은 그런 왼손의 마음을 전혀 모릅니다. 평소 하던 대로 감자를 깎았을 뿐 왼손이 감자를 잘못 쥔 탓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다른 지체들과 함께 다친 손가락을 치료한다고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데요. 그것도 모르고 요즘 자신을 냉랭하게 대하는 왼손이, 오른손은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예전만큼 정답지 않고 데면데면한 두 손을 지켜보면서 머리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한 몸 선발대회에서는 이름 그대로 각 지체가 하나가 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몸을 수상자로 뽑습니다. 그런데 대회를 코앞에 두고 한 몸이 되기는커녕 점점 더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지고 있습니다. 둔감한 지체들까지 느낄 정도로요.

    보다 못한 귀가 나섭니다.

    “오른손, 네가 사과해.”

    ‘내가 왜?’

    오른손은 사과할 마음이 없습니다. 미안하지 않으니까요. 미안하지도 않은데 사과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깨는 왼손을 달래봅니다.

    “오른손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누가 그걸 모르나?’

    왼손도 물론 압니다. 하지만 오른손의 태도가 두고두고 괘씸합니다. 사실 오른손이 왼손에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 일은 정말 부지런히 하는데 눈치가 좀 없습니다. 누가 아픈 줄도 잘 모르고, 아프다 해도 눈여겨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는 각자의 역할이 있으며, 잘했으면 칭찬받고 잘못했으면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 오른손의 신조입니다. 그러니 함께 일하다 왼손이 다쳤다는 이유로 아무 잘못 없는 자신이 나서서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안 되겠군.’

    머리가 작전을 짭니다. 하루는 오른손은 잠자코 있게 하고 왼손에게만 일을 시킵니다. 왼손이 발까지 동동거리게 해놓고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른손이 같이 안 움직이니까 너무 불편한걸?’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오른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가만있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다음 날은 왼손을 꼼짝 못 하게 합니다. 오른손이 전날 왼손이 하던 대로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상황은 똑같습니다. 옴짝달싹 못 한 왼손도 힘들고, 무리한 오른손은 밤이 되자 퉁퉁 부어오릅니다.

    ‘아, 아파! 왼손이 거들어주지 않으니까 힘드네. 왼손 다쳤을 때… 꽤 아팠겠다.’

    왼손도, 오른손도 서로의 존재가 새삼스러워집니다. 사이가 안 좋거나 다소 균형이 맞지 않더라도 같이 움직이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는데 한쪽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니 뭘 해도 쉽지 않습니다.

    오른손이 왼손에게 말합니다.

    “미안해. 그때 내가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좋았을걸, 그러지 못했어.”

    “아냐. 나도 잘한 거 없어.”

    왼손이 쑥스러워하며 오른손의 사과를 받아줍니다. 두 손이 화해하자 머리가 개운해집니다. 어쩐지 몸도 가뿐하고 상쾌합니다. 그제야 지체들은 그동안 두 손보다 머리가 제일 편치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왼손과 오른손의 사과에 머리가 아무 말 없이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내일 열릴 한 몸 선발대회, 예감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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