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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밤 장수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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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정에 갔다가 관광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녹두죽을 포장 주문 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언니랑 주위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었다. 관광객이 많은 시기가 아니라 주변에는 언니랑 나 둘뿐이었다.

    식당 어귀에 군밤 장수가 있었는데, 구매할 마음이 없어서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밤 좀 잡숴봐요!” 하는 것이었다. 살 생각도 없이 먹어보는 것이 눈치가 보여 주춤거렸다. 그래도 그분은 환하게 웃으며 “밤 잡숴봐요”라고 재차 권했다.

    언니가 근처로 가니 그분이 따끈한 군밤을 세 개씩이나 주며 먹어보라고 했다. 언니가 밤을 후후 불며 그 자리에서 하나둘 까 먹었다. 맛있게 먹는 언니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던 그분이 이번에는 “사지 마요”라고 말했다.

    분명 밤을 팔러 나왔을 텐데 사지 말라고 말하는 것에 흥미가 생겨 나도 옆에서 기웃거리자 그분이 내게도 따끈한 군밤을 세 개 쥐여줬다. 한 개를 먹어보니 너무 고소하고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그분은 우리를 보고 밝게 웃으며 금방 구운 밤을 또 건넸다. 사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말에 웃음이 나서 “사장님, 이렇게 장사하시면 손해 보는 것 아닌가요? 저희에게 준 것만 해도 벌써 한 봉지는 파신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분은 껄껄껄 웃다가 잠시 하늘을 쳐다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제게 밤은 돈이 아니에요. 그냥 제가 농사지은 밤으로만 보여요.”

    그제야 그분의 웃음도, 사지 말고 먹어보라는 말도 모두 진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자신이 땀 흘려 키운 밤을 누구든 한번 맛봤으면 하는 마음과, 굳이 사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맛보면 사 가고 싶을 만큼 맛있는 밤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밤이 맛있어서, 사장님이 베푼 넉넉한 인심이 고마워서 밤을 사게 되었으니까.

    예수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복음 전하는 일을 장사에 비유해 주셨다(마 25장 14~30절). 밤 장수와의 만남을 통해, 복음 전하는 자세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누구에게든 웃으며 겸손히 다가가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 들어보기를 권하며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밤은 돈이 아니라 땀 흘리며 정성과 수고로 키운 열매라는 사장님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로 세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을 우리에게 어떤 마음으로 전해주셨을까. 아직 새 언약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자녀 앞에서 타들어 가는 마음을 감추시고 인자하게 미소 지으셨을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소중한 유산을 더욱 가치 있게, 자신 있게 전하는 자녀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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