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시온에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식구들과 지내는 것도, 말씀을 살피는 일도 즐거워서 무엇이든 열심히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습니다. 순항할 것 같던 신앙생활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예배를 드리거나 모임을 하러 교회에 가기 어려워진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습니다. 대인 관계가 학생 때처럼 쉽지 않다는 부담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온라인 예배로 시온에 가지 않으면서 몸도 마음도 점차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순간의 즐거움을 좇는 데 익숙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항상 허전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팬데믹이 종식되고 다시 시온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온은 변함없이 따듯했고 식구들은 다정했습니다. 제가 찾던 온전한 행복과 충만한 기쁨은 하늘 어머니의 품 안에서 누릴 수 있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를 다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전처럼 믿음 생활에 힘썼습니다. 시온에는 복받을 일이 많았고 기회도 많이 주어졌습니다. 다만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게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말과 행동에 젖어 있었으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설교집 《하나님과 동행》을 읽다가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보통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합니다. 하물며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제게 좋은 것만 선물해 주시겠지요. 생각해 보면 제가 힘들게 느꼈던 인간관계 또한 제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선물이었습니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상처받던 제가 여러 입장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며 전보다 단단해졌으니까요. 제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하나님께서는 저를 향한 사랑과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부어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깨닫지 못한 채 방황했던 것이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 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옥천고앤컴연수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학기 중에도 말씀 공부와 복음 전파에 힘써서 어머니께 상을 받는 식구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도, 말씀 상고 모두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마땅히 할 일이지만 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이 당연한 일을 할 때도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구원이 약속된 시온으로 속속들이 돌아오는 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남겨 어머니를 미소 짓게 하는 식구들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다음에는 어머니께 기쁨을 드려 저 자리에 서고 싶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비전은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지금껏 막연하게 눈앞의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어떤 목표나 소망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간절히 이루고 싶은 비전이 생기니 자연스레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같은 학과 친구 전부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일이고, 할 생각도 못 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간절함이 망설임과 부담감을 밀어냈다고 할까요. 이 중에도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할 형제자매가 있다고 생각하니 적어도 제 주변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틈날 때마다 전도했습니다.
그중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직후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접하고 저와 교회를 오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 친구의 말을 듣고 오해하게 되면서 너무 속상했고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강퍅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예전처럼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제 곁에는 저를 위로해 주는 식구들이 있고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어머니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위로해 주는 이 없는 쓸쓸하고 험난한 길을 외로이 걸으셨을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가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잠깐의 시련조차 제게 허락된 선물로 느껴졌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자녀들을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실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지 생각하며 다시 힘을 냈습니다. 친구에게 성경을 보여주며 하나하나 오해를 풀고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친구는 점차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진리를 인정하고 이후 규례도 지켰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거듭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불편하고,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황도 하나님을 의지해 이겨내려 노력하면 국면을 전환시킬 힘과 지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복음에만 집중하려 애쓰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하늘 가족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천주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성경도 자주 읽는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친구와 각자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장 37절)라는 구절을 꼽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유월절이,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첫째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그 계명을 이루는 방법인 유월절을 곧바로 알려주자 친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규례를 지키고 성경 공부를 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내보이던 친구는 자신의 단짝 친구도 꼭 같이 축복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마음을 모아 그 친구에게 진리를 알렸고, 그 친구 역시 엘로힘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외에도 어머니의 따듯한 사랑을 그리워했던 친구, 사촌 오빠 등 많은 이들이 진리를 깨닫고 죄 사함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알 수 없는 허전함으로 보낸 그전과 달리, 2023년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기쁨과 감사로 꽉 채운 1년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작년에 열린 행사에서 상을 받을 때, 비전을 세우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이미 얻은 게 많아 더욱 가슴이 벅차고 감사했습니다. 이후로는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는 상황을 만나거나 육체의 한계에 부딪혀도 엘로힘 하나님을 의지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적은 노력과 희생이지만 아버지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는 데 감사하며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는 동안 그해에는 50명의 하늘 가족을 찾았습니다.
제가 믿음을 갖고 모든 것을 바라본다면 하나님 안에서는 만나는 사람도, 마주치는 환경도 다 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주시는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잠시 웅크렸던 시간조차 힘차게 뛰어오를 준비를 하는 기회였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방향을 다시 설정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해외 선지자라는 또 다른 비전과 더 넓은 복음의 시야를 갖고, 전 세계 곳곳에서 복음에 헌신하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달려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