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입니다. 목포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하며 집안을 꾸려왔지만 궂은일에 비해 수입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점점 안 좋아져 근심이 늘던 차에 평택에 괜찮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 학교도 그렇고 가족들이 다 함께 터전을 옮기기는 부담스러워 결국 홀로 평택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선 데서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은 심란했습니다. 직장 기숙사에서 지내며 새로운 일터와 환경에 적응해 가던 중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습니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객지 생활 속에 저만 아니라 동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객지에서는 일뿐 아니라 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퇴근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도 없는 숙소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려 했던 일 중 하나가 하나님의 교회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 설교를 시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즉에 진리를 영접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을 뿐 큰 믿음은 없었고 가지려 하지도 않았던 저였습니다. 아내와 딸이 원하니 매년 유월절을 지키고 한 달에 한두 번 예배를 드리는 정도였습니다. 그 세월이 10년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때때로 진리 말씀이 참 놀랍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되새겨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불현듯 떠오른 설교 말씀을 출퇴근 때도, 숙소에 돌아와서도 온라인으로 늘 듣다 보니 메말랐던 마음 밭이 생명수로 적셔지고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내 영혼의 부모님이시라는 사실이 마음에 새겨지면서 이 진리야말로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줄’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건설 현장의 제1원칙은 ‘안전’입니다. 6~7미터 정도 되는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생명줄’이라 부르는 밧줄을 벨트에 연결해 안전한 곳에 걸어두고 작업을 합니다. 생명줄을 걸지 않고 작업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제가 가볍게 여기고 별 관심이 없었던 새 언약 진리가 바로 제 영혼을 하나님께 든든히 고정시켜 구원으로 인도하는 생명줄이었습니다.
이 축복을 저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항상 위험한 현장을 누비는 동료들이 꼭 하나님 안에서 영육 간 안전하길 바라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4명이나 하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누군가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이 그 사람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아내가 왜 그 오랜 세월 저를 포기하지 않았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저를 위해 애써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에 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전도가 쉽게 느껴졌습니다. 한 동료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까지는요. 그 동료는 저보다 나이가 많아 형님이라 불렀는데 매사에 성실하고 누구에게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인품이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니 180도 달라졌습니다.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다시는 교회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고향 이야기를 나누면서였습니다. 형님과 제가 동향, 그것도 같은 시기에 같은 리(里)에 살았다는 사실을 우연찮게 알게 된 겁니다. 타지에서 만난 고향 사람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마음의 거리가 한껏 좁혀져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형님이 수년 전 부산에서 하나님의 교회에 가본 적도 있고 ‘진심, 아버지를 읽다’전까지 관람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몇 번 말씀을 살폈지만 아버지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진리가 마음에 와닿지 않아 다시는 안 오겠다고 으름장을 놓다시피 했다고요. 고향 사람이 반갑기는 하지만 신앙에 관해서는 각자 알아서 하자는 단호함에 저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기란 어려웠습니다. 형님의 태도에 마음이 상하고 기운이 빠졌어도,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그저 지켜볼 이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게 전도는 그와 같았습니다. 구원받는 방법을 몰라 방황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줄을 건네는 일이요. 초막절 전도축제를 맞아 형님에게 다시 한번 말씀을 전해보자 다짐하며, 형님의 영적 눈과 귀를 열어달라고 절기 기간 조석으로 빠짐없이 기도드렸습니다. 마침 형님과 제 근무지가 가까워져 전보다 더 자주 만나 꾸준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형님이 어느 날 안상홍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간 영상 설교와 시온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열심히 하늘 아버지를 증거했습니다. 그제야 형님은 좀 알겠다는 듯 관련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동영상 링크를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퇴근 무렵 바로 링크를 보냈고, 다음 날 출근한 형님은 궁금한 부분을 질문했습니다. 형님이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이른 6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하기에 저도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매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화 주제는 거의 교회와 진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걸 어떻게 다 알아요? 정말 대단하시네”라며 유난히 긍정적으로 호응하기에 이제는 마음의 준비가 됐겠다 싶어 침례를 받고 하늘 가족이 되길 권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정적이 흘렀습니다. 잠시 뒤 형님은 애써 허허 웃으며 “분위기 참 좋은데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이제 집에 갈 시간입니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벌써 네 번째 거절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몸이 무거웠습니다. ‘말씀은 참 잘 들으면서 대체 왜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을까’, ‘나한테 무엇이 부족했을까’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맥이 탁 풀려서 그만 전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형님이 진리를 마음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여느 때처럼 같이 커피를 마시다 형님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전도하려 하느냐고요. 저는 우리가 일할 때 안전, 즉 생명 보호가 가장 중요하듯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시하시는 것도 생명 살리는 일이라고, 그 생명줄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던지는 것이 제 간절한 바람이라고 답했습니다.
“형님은 이전에 다른 누군가가 생명줄을 내밀었을 때 잡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또 저를 만났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형님에게 그 밧줄을 잡으라고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거예요. 그래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거고요. 형님이 언젠가 진리를 마음으로 깨달아서 제 심정을 알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후로 가타부타 말이 없던 형님이 며칠 뒤 점심시간에 식판을 들고 와 제 앞에 앉았습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더니 마침내 입을 뗐습니다.
“그 생명줄, 내가 잡겠습니다. 침례 받을게요. 그동안에 내가 섭섭하게 했던 것은 잊어버리세요.”
알고 보니 형님은 제가 보내준 영상을 모두 봤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 관해 자기 나름대로 많이 알아본 상태였습니다. 결론은 나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직 성경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이전에 교회에 방문했을 때도 성도들의 표정이나 행동이 참 좋았다면서요. 진심 어린 형님의 말에 저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기뻤습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주 잘 생각했다며 반겼습니다.
마침 설을 맞아 고향을 방문할 겸 형님이 목포에 있는 시온을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혹여나 그사이에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까,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형님의 손을 놓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렸습니다. 며칠 후 안식일에 시온을 방문한 형님은 다시금 말씀을 진지하게 살핀 후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고 안식일 규례도 지켰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는 성격을 가진 형님은 평택으로 돌아와서도 꾸준히 규례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책도 한 차례 정독하고 다시 읽는 중입니다. 이제는 저와 함께 직장 동료들에게 진리와 시온을 자랑하며 영혼 살리는 데 앞장서, 지난 유월절 전도축제 때는 두 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마음을 열기만 하면 이토록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를 영혼인데, 인내하지 못하고 더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려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버지 어머니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복음 전도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줄을 건네는, 아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번에 형님을 인도하며 확실히 깨달은 것은, 전도가 제 생명줄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입니다. 형님을 살려야겠다는 간절함에 부족한 말씀 공부를 더 자주 하고, 늘 설교 영상을 시청하고, 하나님께 더더욱 매달렸습니다. 간간이 목포에 내려갔을 때도 아내와 진리 발표를 연습했고 시온에서는 앞선 장년부 식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온 가족들은 제게 늘 용기를 북돋아 줬고 형님의 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출근길에는 ‘오늘은 어떤 말씀을 전할까’ 생각하며 즐겁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형님을 살리기 위한 준비인 동시에 제 믿음과 영혼을 더욱 강건케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침 일찍 출근해 형제님과 말씀을 살피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가족을 떠나올 땐 마음고생을 꽤나 했습니다. 그 일에도 하늘 가족을 찾으라는 하나님 뜻이 담겨 있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저 혼자서는 결단코 할 수 없었다는 것도요. 모든 길을 인도하신 아버지 어머니와, 막 복음의 발걸음을 뗀 저를 도와준 시온 가족들과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현장 일을 하며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종종 느낍니다. 그래서 영혼의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절감합니다. 앞으로도 기도와 말씀에 착념해 제 생명줄을 단단하게 묶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생명줄을 열심히 내미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은 웃음으로 복음의 열정을 지피는 전 세계 하늘 가족들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곁에는 우리를 든든히 지탱해 주시는 엘로힘 하나님이 늘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