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해서 그렇지, 작정하고 파고들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잘 봐라.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확실하게 보여줄게.’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아내를 보고 괜한 오기가 솟아올랐습니다. 기독교 신앙 경력이 꽤 되는 가까운 가족한테서 “성경만 놓고 보면 하나님의 교회가 옳지만 어쨌든 나는 못 받아들이겠더라”고 하는 말을 들은 직후였지요.
아내의 마음을 꺾어놓을 자신감은 차고 넘쳤습니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상 머리 싸매고 연구하다 보면 남들은 모르는 하나님의 교회의 허점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석 달의 기한을 정하고 매주 한 번씩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 데 딱 석 달 걸렸습니다. 아니, 사실 공부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이미 알았습니다. 성경은 사실이었고, 그 성경이 증거하는 재림 그리스도와 하늘 어머니는 틀림없이 하나님이셨으며, 새 언약을 지켜야 구원받는 게 확실했습니다.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더군요. 진리가 맞다면 그저 따르고 행하면 될 일을, 내가 틀릴 리 없다는 오만과 이대로 굴복할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저는 오히려 아내에게 더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어떤 검보다도 예리해서 혼과 영과 골수까지 찌르지 않습니까. 제가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는 와중에도 가슴속 저 아래에서는 ‘옳은 길을 따라야 한다’고 양심이 계속 소리쳤고, 밤에 잠을 자면 꿈속에서도 진리와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저 자신이 너무 답답해서 혼자 성경을 뒤적였습니다. 어느 구절에 어떤 말씀이 있는지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엘로힘 하나님을 믿고 새 언약을 지키는 것이 우리 가족이 구원받는 길이 분명했습니다. 마침내 확신이 선 저는, 잠든 아내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이 다 맞다고, 그동안 내가 잘못했다고 말입니다.
아내와 끌어안고 둘이서 눈물을 펑펑 쏟은 그날 이후 제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진리를 영접하기까지 몇 달의 시간과 일련의 과정은 무신론자에서 신앙인이 된 저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다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토록 자고하며 죄를 지었으니 남은 생애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한 가지는, ‘최선’의 정의였습니다. 그저 예배에 참석하기만 하면 되는지,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무언가 할 일이 있는지, 모든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시온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배우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 새노래로 찬송하고, 이제 가족이 된 영의 형제자매와 시온의 향기를 나누고….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제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바로 전도였습니다. 예전의 저처럼 하나님을 모르고 구원의 손길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깨닫고 얻은 진리와 축복을 전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리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더군요. 무엇보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질수록 해외 복음이 눈에 밟혔습니다.
‘저 드넓은 세상에는 새 언약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나도 나가서 목이 쉬도록 발이 부르트도록 여기저기 다니면서 외쳐보고 싶다. 하나님께서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으니까.’
현실적인 방법이 눈앞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저 하나님께 간구할 뿐이었습니다. 정말 계속 기도드렸습니다.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게 해달라고요. 물론 해외에서만 복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주위에만 해도 가족을 비롯해 구원의 기별을 기다리는 사람이 넘쳐났습니다. 단지 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계복음 완성의 사명을 제 능력과 고정관념의 틀 속에 한정 짓고 싶지 않았고, 여건과 환경을 이유로 할 수 없다고 핑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시간이 날 때마다 시온 식구들과 열심히 전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마침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휴가 기간쯤 해서 캐나다로 단기선교를 다녀올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학창 시절 수업 때만 공부했던 영어를 다시 익히기가 생각보다 어려웠고 현지에 가서도 ‘마음껏’ 복음을 전하기엔 여러 제약이 따랐지만, 여정을 마치면서 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길이 우리 부부가 가야 할 길이다!’
한국에 돌아와 아내와 상의한 끝에 장기선교를 준비했습니다. 목적지는 브라질이었습니다. 포르투갈어는 배우기가 더 까다로웠고 장기선교는 단기선교보다 준비할 것이 훨씬 많은 데다 복잡하기까지 했지만 오직 하나님만 믿고 나아갔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늦은 밤 잠들기 전까지 오직 복음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명은 저 자신의 열정과 만족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님을 곧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리는 지역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도시로 복음 터를 옮겼는데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치면서 불과 몇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진리 안에 거한 후로 ‘실패’를 경험한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만한 그릇이 아닌가 보다고, 내게 맞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힘을 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해외 선교에 대한 열망이 마음 한구석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꾼이 너무나 많이 필요하고, 그만큼 나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브라질에서의 경험을 실패라고 단정 짓기에는 느끼고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번 길을 열어주시길 간구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직장을 옮기게 됐는데 거기서 생각지 못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각자에게 허용된 범위 안에서 해마다 한 번씩 휴가를 길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응원 속에, 아직 시온이 세워지지 않은 지역이 많은 가나, 에티오피아, 앙골라 등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로 단기선교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는 몇 달 생활했던 브라질과 여러 면에서 전혀 환경이 달랐고 그래서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음 해에 다시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지원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어설프게 말씀을 전해도 어머니 하나님과 새 언약을 난생처음 듣는다며 눈을 반짝이는 이들을 마주하노라면, 하나님께서 이토록 부족한 저를 머나먼 이곳까지 보내주신 이유가 절절히 느껴졌고, 그런 영혼을 찾으려 복음에 헌신하는 현지 시온 식구들의 모습 또한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식구들은 복음에 매진하려 새벽 서너 시에 거친 현장에서 일하고 오전에 곧장 달려와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물가가 비싸서 전도하러 가는 데 차비로만 월급의 절반 이상을 써야 했지만 식구들의 생활과 정신은 그런 여건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노라 다짐하면서도 이런저런 걱정이 생기거나 자잘한 걸림돌을 만나면 어느새 그 상황에 매몰되고는 했던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영접한 초기에 제가 궁금해했던 ‘최선’의 의미는, 몇 번의 단기선교를 경험하는 동안 확실히 새겨졌습니다. 복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 내 여건과 상황에 맞춰 사명의 크기를 스스로 정해서 그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만큼 이룰 수 있도록 그에 합당한 능력과 여건을 간구하며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장 바라는 만큼 이루지 못하고 때로는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도전하고 노력하는 자체가 내 믿음을 일깨우고 단단하게 해주는 자양분이 될 테니,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무릎을 일으켜 전진한다면 오늘의 실패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연단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어도, 눈앞의 여건이 어려워 보이고 자기 자신이 나약하게 느껴져서 시도조차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실패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여러 차례 단기선교를 나서고 당회에서 직책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동안, 과거에 제 신앙을 반대했던 부친은 진리를 영접하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셨고 아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시온에서 많은 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현실적인 여건을 따지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진리를 영접한 지 얼마 안 되어 나섰던 첫 전도에서 만난 청년에게 아직도 미안합니다. 제가 준비가 덜 되어서 이 귀하고 확실한 진리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탓입니다. 그런 안타까운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기도와 노력, 이 두 가지를 결코 손에서 놓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면, 설령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께서 언제나처럼 권능의 손으로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