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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또렷이 마주한 순간

2025.0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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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랫동안 배우로 일하며 한국 대하드라마의 몽골어 더빙을 맡았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근대 역사까지 알게 됐습니다. 작년에 해외성도 방문단으로 방한 당시 관람한 ‘진심, 아버지를 읽다’전과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은 저에게 한국 문화의 이면은 물론, 더빙을 하면서 느낀 한국 부모님들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작품들을 찬찬히 감상하며,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7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의 삶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날따라 유독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도 많이 생각나더군요.

    제가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로서는 남편 없이 양 떼를 치고 가족을 건사하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수천 마리의 양을 몰고 개울로 내려가 차가운 물로 일일이 배를 씻겨야 했는데, 어머니가 몸이 물에 반쯤 잠긴 채 하루 종일 그 일을 하고 돌아오면 살이 말도 못하게 불어 있었습니다. 붓기와 통증을 가라앉히려 몸에 연고를 발라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결국 어머니는 단호히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7남매를 데리고 대도시인 울란바토르로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단지 어머니 자신만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은 저희에게도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양 떼를 먹이고 돌봐야 하는 와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친척들의 가축까지 돌보고 장작도 패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희 모습이 계속 눈에 밟히셨나 봅니다. 이대로라면 자식들이 평생 고생을 면치 못할 거라 생각하셨는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식을 잘 가르치고 키울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만 품고 미지의 세계로 향했습니다.

    3일 동안 길에서 쪽잠을 자면서 울란바토르에 산다는 친척을 찾아 헤맸습니다. 날이 따뜻한 시기라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낯선 도시에 겨우 자리를 잡으면서 저희는 점차 고생을 벗어났습니다. 어머니만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7남매를 키우려면 쉼 없이 일하셔야 했으니까요. 낮에는 험한 공사 현장에서 벽돌과 시멘트를 나르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남의 집 옷감을 수선했습니다. 제가 학교에 가려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는 옷감 옆에서 졸고 계셨습니다. 저희 기척에 얼른 아침밥을 차려주고는 다시 벽돌을 나르러 집을 나서셨습니다.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신 모습이 안쓰러워 저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안일을 거들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어머니를 창피해하기도 했습니다. 가끔 학교로 찾아오시는 어머니는 늘 후줄근하고 지저분한 옷차림이었습니다.

    나이를 먹고서야 철없던 모습을 후회하며 어머니께 잘하려 노력했습니다. 못다 한 효도를 하려 결혼하고 나서도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 시간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으리라 믿습니다. 어머니를 도우며 살림의 어려움을 잘 알았기에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요즘도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며 열심히 아내를 돕습니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과오와 그 시절 어머니의 애틋한 모성을 한국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통적인 한국과 몽골의 문화는 각각 농업과 목축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많은 면에서 다릅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본 한국 어머니들의 사연과 사진 속에서 저희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이든 기꺼이 감내하는 어머니들의 사랑이 어느 나라든 다 동일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 사랑에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대통령과 같은 공직자들도 꼭 이 전시회를 봤으면 합니다. 세계 전역에 만연한 갈등과 분쟁은 대부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분쟁과 갈등을 종식할 힘을 가진 이들 또한 한 여인의 아들이자 딸이기에 전시회에 들어간 순간 뜨거운 감정을 느끼고 어느새 어머니의 마음을 닮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자녀를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 그런 포용력을 가진다면 세상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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