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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인생, 아빠의 세상

2025.02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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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아빠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어요?’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최근 명예퇴직을 하게 된 아빠에게 마음으로만 건넸던 질문입니다. 아빠 앞에서는 “그동안 수고 많으셨으니 이제 하고 싶은 걸 해보세요”라며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던 아빠가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울감이나 무력함을 느끼지 않을까 마음이 무거워서였습니다.

    그때 당회에서 ‘진심, 아버지를 읽다’전이 개관했습니다. 입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칼럼을 읽었습니다. 가족 내 아버지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는 글이 우리 집 이야기인 것 같아 아빠에게 미안했습니다.

    한 아버지의 다정한 편지도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딸을 ‘공주’라고 부르며 써 내려간 내용에 저와 아빠를 대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이 도착하지 않아 매우 속상해하던 제게, 아빠가 봉투에 용돈을 담아 겉면에 편지를 써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용돈 자체보다 “네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편지 내용에 큰 위로를 받았었는데, 전시된 편지의 글씨체가 그때 아빠의 글씨체와 너무도 닮아 보였습니다.

    관람 후, 부대 행사장에서 아빠에게 엽서를 써서 부쳤습니다. 제가 받은 감동을 함께 느끼고 싶으니 꼭 같이 오면 좋겠다고요. 얼마 뒤 아빠 침대 머리맡에 놓인 제 엽서를 발견했습니다. 아빠에게 내용을 읽었냐고 물어보니 별말이 없었습니다. 다른 날, 언제 전시회에 갈 거냐고 물었더니 “가긴 갈 건데 오늘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어떤 날은 날이 너무 더워서, 어떤 날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그래도 ‘가긴 갈 것’이라 말했으니 아빠가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 아빠는 그런 분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예상치 못한 휴일이 생겼습니다. 전날 밤, 전시회 간다고 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돼간다며 아빠에게 슬쩍 말을 꺼냈더니 “약속했으니 가야지. 언제 가면 되는데?”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바로 다음 날 드디어 아버지전을 관람하러 갔습니다.

    아빠가 눈이 안 좋으셔서 전시 작품을 대강 보고 넘어갈까 봐 걱정했는데 아빠는 글을 자세히 읽기 위해 눈가를 찌푸리기도 하며 집중해서 관람했습니다. 작품을 볼 때마다 그와 비슷한, 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아빠의 감정이 제게도 전해졌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아빠와 속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빠는 전시회에서 본 모든 것이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려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꼈다며 극찬했습니다. 또 교회에서 만난 분들의 얼굴에서 하나님께 복받은 사람들이라는 티가 난다며, 본인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 준 시온 가족들의 정성에 고마워했습니다. 전시 내용을 되짚던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래, 내 세상에는 내 딸, 너 하나밖에 없는데.”

    울컥했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표본 같은 아빠에게서 평생 듣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또 있었습니다. 아빠가 지금까지 매일 우리 가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작은 제가 열 살일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빠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가 거의 다 부러졌습니다. 폐에 물이 차올라 숨이 쉬어지지 않는 와중에도 아빠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아직 딸이 어리니 조금만 더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빠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거라며 그때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엄마와 제가 아빠에게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두 명의 천사, 두 개의 달란트’라며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저희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여태껏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저를 이렇게 많이 사랑하고 아빠의 인생이 곧 저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아빠가 달리 보였습니다. 저를 위해 살아준 아빠가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아빠와 저 둘 다 욱하는 성질이 있어 이전에는 서로에게 불만스러우면 바로 쏘아붙이곤 했는데, 아빠의 진심을 안 뒤로는 짜증을 내기보다 참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서로를 더 소중히 대하게 되면서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말다툼한 적이 없습니다.

    요즘 아빠는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물어봅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저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아빠표 반찬은 정말 맛있습니다. 아빠의 사랑이 들어가서 그렇다나요. 이런 말이 아빠의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전에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만큼 아빠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퇴근 후 한 시간은 저희 부녀의 ‘수다 타임’입니다. 휴일이면 아빠를 모시고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아다니며 커피도 마시고요. 이전과 달라진 저희 모습에 엄마가 행복해하는 것은 덤입니다.

    사실 아빠는 오래전 새 생명의 축복은 받았지만 줄곧 시온에 발걸음을 하지 않다가 몇 년 전부터 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아빠가 함께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빠가 저보다 더 오랜 시간 하나님과 대화하고 영적으로 호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전시회 관람 후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예배에도 참석하기 시작한 아빠가,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전시회를 통해 아빠의 마음을 열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아빠를 지키는 딸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합니다.

    “아빠, 남은 인생은 하늘 본향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보냈으면 좋겠어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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