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 남편과 친정을 찾은 어느 날, 아빠가 “너한테 줄 게 있다”며 노트를 쓰윽 내미셨습니다. 펼쳐보니 살림에 유용한 정보를 다룬 신문의 한 코너를 오려 붙인 스크랩북이었습니다. 얼핏 봐도 1년이 넘도록 모으신 듯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아빠의 선물과 그에 들인 정성에 놀라 “우아, 아빠 최고!”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무뚝뚝하고 엄격한 아빠를 어려워해서 늘 ‘아버지’라고 불렀고 ‘아빠’라고 부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막내지만 살갑지 않고 성격도 소심한 편이라 애교가 없는 딸이었지요. 그런데 그날은 ‘아빠가 날 이렇게 생각해 주고 있었구나’ 싶어 저도 모르게 애교가 약간 섞인 말투가 나왔습니다. 제 말에 아빠는 정말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흔히 볼 수 없던 아빠의 그 미소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아빠가 돌아가신 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스크랩북이 눈에 띄어 오랜만에 꺼내 펼쳐보았습니다. 스크랩북을 받았을 당시에는 아빠의 세심함이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울컥하던지요. 한 장 한 장 오리고 붙이면서 저를 떠올리셨을 아빠를 생각하니 아빠가 겉으로 표현은 안 하셨어도 저를 많이 사랑하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못 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제가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일하느라 늘 바쁘셨던 터라 아빠와의 추억도 별로 없습니다. 기억 속의 아빠는 말수도 적고 늘 묵묵히 성실하게 본인 할 일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경비로 일하시면서 늦거나 일을 빠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쉬는 날에는 집 옥상에 꾸린 텃밭을 돌보셨습니다. 외출하더라도 농작물에 물 주는 시간에 맞춰 꼭 집에 돌아오실 정도로 애지중지하셨지요. 거기서 기른 여러 채소로 담근 김치가 식탁에 올라오고, 고추를 수확해 고춧가루를 빻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이 다 결혼해 독립한 뒤로도 아빠의 농사일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빠가 갑자기 전화해 “집 앞에 잠깐 나와라” 하셔서 나가면 직접 기른 상추나 시금치 등을 건네주고 가셨습니다. 바깥일만도 피곤할 텐데 농사까지 지었던 것은, 가족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수고도 다 잊을 만큼 기뻐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빠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겠지요.
예의를 중시한 아빠는 자녀들을 매우 엄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배려해야 한다,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예의에 맞지 않게 행동하면 크게 혼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아빠는 무섭고 대하기 어려운 분이었는데 막상 성인이 되고 보니 아빠의 가르침이 피가 되고 살이 되었습니다. 사회생활 할 때도, 결혼한 뒤 시어른을 모실 때도, 시온에서 식구들과 함께할 때도 아빠 덕분에 몸에 밴 예의가 큰 도움이 되어 감사합니다.
무섭고 엄격하게만 느꼈던 아빠가 저희 부부의 상견례 날과 결혼식 날 눈물을 보이셨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엄마에게 들었습니다. 아빠는 딸이 바로 시가에 들어가 산다고 혼수도 따로 챙겨 가지 않아 혹여 시집살이를 고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빠 마음을 다 헤아려드리지 못했던 딸과 사위였지만 결혼한 후 자주 찾아뵈며 챙겨드리니 점점 마음이 풀리시는 듯했습니다. 저와는 다르게 성격이 밝아 아들처럼 살갑게 대하는 사위에게 마음을 여시는 눈치였습니다. 아빠는 제 생일뿐 아니라 사위 생일 때도 꼬박꼬박 전화해 챙겨주셨습니다. 가족들이 모였을 때 엄마나 이모가 저희 부부에 대해 ‘행복하게 잘 살고 참 보기 좋다’고 이야기하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시곤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주최한 가족 초청 잔치에 부모님을 초대했을 때는 아빠가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하셔서 오히려 놀랐습니다. 아빠는 그동안 제 신앙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터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들 가족들을 초청했는데 내 딸과 사위만 초대자가 없으면 어떡하나 싶어 오셨다는 말에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던 날도 아빠는 사위 얼굴 봐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전 관람 후에는 포토존에서 단란하게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할 때 팔짱 낀 이래로 모처럼 아빠와 팔짱을 끼고요.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 아빠가 밝게 웃으시는 사진이 그것밖에 없어서 봉안당에 함이랑 같이 그 사진을 넣었습니다. “이 사진을 남긴 게 아빠한테 큰 효도다”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기억납니다. 아빠 살아계실 때 그만큼 웃게 해드린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죄송스러웠습니다.
‘진심, 아버지를 읽다’전을 처음 관람했을 때, 아빠와 어머니전을 관람했던 날 나눈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아빠, 전시회 내용 좋죠?”
“그래, 좋은데 왜 아버지에 대한 건 없냐? 그게 좀 서운하네.”
“나중에 아버지전도 할 수 있어요. 그때 보러 오세요.”
아빠가 끝내 아버지전을 못 보셔서 안타깝습니다. 딸을 향한 사랑이 듬뿍 담긴 당신의 스크랩북이 전시된 걸 봤으면 내색은 안 해도 속으로 무척 기뻐하셨겠지요. 이제는 아빠한테 애정 표현도 하고 살갑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곁에 계실 때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늦었지만 마음속으로라도 말해봅니다. 묵묵한 아빠의 사랑에 답하지 못했던 딸이어서 죄송해요. 아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