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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작은 행동과 말이

2025.0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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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주로 다녀가는 과학관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그간 시온에서 유아, 초등학생들을 돌봤던 경험을 살리니 어느 정도는 괜찮았다. 하지만 지도를 잘 따르지 않는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열정적인 마음이 식어 돌처럼 굳곤 했다.

    어릴 적 나도 그렇게 자랐고, 어쩌면 훨씬 말썽쟁이였겠으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내 모습은 까맣게 잊고 눈앞의 아이들에게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성이 높아지고, 아이들이 많이 방문할수록 웃음보다는 울상을 짓게 되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 오전에 유치원생 80명과 개구진 전투를 마치고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 40명이 오후에 단체관람을 한다는 기쁜(?) 소식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그래도 말이 통하는 나이다. 인사성이 바르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도 방심하면 꼭 일이 생기니 긴장의 끈을 붙들었다. 부디 안전사고 없이, 분실물 없이 관람이 끝나길 바라면서.

    이윽고 아이들이 과학관을 덮쳤다. 뛰고, 넘어지고,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수도 없이 묻고…. 그중 한 여자아이가 애타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15분 전 노도와 같은 아이들 사이에서 바르게 인사하고 차례를 지키며 설명을 끝까지 듣고 재밌게 체험을 즐기던 아이였다. 눈빛이 얼마나 강렬하던지 내가 먼저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얘야. 무슨 일 있니?”

    “아… 저… 제가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선생님이 모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못 찾겠어요.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불안에 떠는 눈빛과 동동거리는 발을 본 나와 직원들은 아이의 설명대로 동선을 되짚어 갔다. 하지만 휴대폰을 발견하지 못하자 아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네 휴대폰 전화번호가 뭐니? 전화를 걸어보렴.”

    아이는 내가 건넨 휴대폰에 다급히 자신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벨소리나 진동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요함을 뚫고 아이가 침착하게 말했다.

    “저,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모두 저만 기다리고 있거든요. 같이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는 4학년답게, 아니 그보다 어른스럽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 의젓함에 크게 감동했다. 내가 같은 나이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휴대폰을 찾으면 꼭 연락할게. 반드시 찾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아이의 곤란함을 해결해 주겠다는 어른의 결의였다. 이후 30분 동안 관람객이 없는 사이 열심히 휴대폰을 찾아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아까 휴대폰 찾던 여자애인데요. 휴대폰 찾았어요. 제 친구가 보관하고 있더라고요. 같이 휴대폰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나 그 아이나 헛수고를 한 셈이었지만 허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걱정 말고 남은 소풍을 즐기라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날 내내 행복이 나를 감쌌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하루의 피곤함도 다 잊었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아이의 작은 표현에 안타까움과 기쁨이 오갔던 상황을 복기하며 여운을 느꼈다.

    문득, 내가 휘청거릴 때 몇 번이고 붙잡아 주시고, 나의 작은 숨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며, 언제나 나와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께 얼마나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했는지 돌아봤다. 과거의 부끄러움과 오늘의 회한이 겹쳤다. 내일은 하나님께 존중과 감사의 표현을 아낌없이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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