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엄마는 며칠 전부터 분주했다. 고향에 내려오는 친척들이 먹을 음식과 머물 잠자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일장에 나가 평소에 먹기 힘들던 고기와 과일을 사고, 쌀을 튀밥으로 만들어 가져오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온 물건이 담긴 대바구니는 바짝 감아올린 파마머리 위에 똬리와 함께 얹어져 있었고, 하얗게 핀 튀밥을 담은 봉다리는 키 작은 엄마 손에 끌리듯 들려왔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친척들이 덮을 이불을 빠는 것이었다. 요즘이야 세탁기에 휘휘 돌려 몇 번이라도 쉽게 빨래를 할 수 있지만, 어릴 적 이불 빨래는 연중행사처럼 치르는 큰 일거리였다. 목화솜에 광목을 입힌 이불은 어찌나 무거운지, 어린 내겐 아침마다 이불을 개어 장롱에 올려놓는 것조차 무척 버거웠다.
광목 홑청은 뻣뻣한 데다 때가 타면 잘 지워지지 않아서 반나절은 물에 담가 불리고 발로 밟아서 빨아야 했다. 빤 홑청을 햇볕에 바짝 말린 후 곱게 개어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다듬이질을 시작한다. 다듬이질을 다 하면 홑청 위에 올라가 꾹꾹 밟아준다. 이 일을 서너 차례 반복하는데, 이때 엄마와 할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어느 장단보다 듣기 좋았다.
다 두들긴 홑청은 양쪽 끝을 마주 잡고 팽팽하게 잡아당겨 그 위에 물을 뿌린다. 당시에는 분무기가 없어서 그릇 한가득 물을 담아 오면 엄마가 입에 머금고 마치 투레질하듯 천 사방으로 풀었다. 다음에는 할머니의 현란한 다림질이 시작된다. 숯이 벌겋게 피어오른 숯다리미는 아무리 엄마라도 다루지 못했고 할머니만 능숙한 솜씨로 다룰 수 있었다. 숯다리미가 하얀 수증기를 피워 내며 지나가는 자리마다 광목 홑청이 빳빳해졌다. 다림질을 할 때는 햇빛 냄새 같기도 하고 비릿한 비누 냄새 같기도 한 냄새가 났다. 묘한 그 냄새가 싫지 않고 새것 같은 느낌을 줬다.
곱게 마련된 이불을 덮고 고향 냄새가 난다며 좋아하던 친척들의 애틋한 웃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포근함과 정겨움은 할머니의 숯다리미 솜씨와 엄마의 손끝에서 나온 정성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