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Menu

수필

너는 나 닮아서

2025.08706
  • 글자 크기



  • 나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내게 칭찬이 인색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가 오빠는 특별히 예뻐하셨다. 오빠는 종손이고 외아들인 데다 아버지를 닮아 공부를 아주 잘해서 바라던 대학교에 합격했고 교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는,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칭찬에 항상 목말랐다.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서 늘 칭찬받는 학생이었고, 취업을 해서도 행장 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잘했다!” 한마디가 끝이었다. 자장면이라도 사 주시려나 기대했지만 아무런 이벤트도 선물도 없이 지나갔다. 아버지가 야속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아버지는 아주 먼 친척처럼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는 인정이 없으신 분이구나’ 생각하며 아버지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나 별다른 애정 없이 ‘그래도 아버지시니까 도리는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아버지는 가난 빼고는 어디 빠질 것이 없는 분이셨다. 미남이고 팔다리가 길어서 멀리서 보면 이국적인 느낌이 나고, 똑똑하기로 유명하셨다. 아버지는 늘 자신감이 넘치셨다.

    내가 “아부지, 나는 머리가 나쁜 것 같아” 하면 “너는 나 닮아서 조금만 있으면 두뇌가 팍팍 돌아가서 잘 해결될 거다. 두고 봐라!” 하셨더랬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뜬구름 잡는 분이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버지의 말씀대로 인내를 하니 더 큰 성과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머리숱이 별로 없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아부지, 나 머리카락이 막 빠지는데 어떡해요?”

    “너는 나 닮아서 그것도 잘 해결하며 살 거야, 살다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이고, 아부지. 큰일났네. 아부지 눈에만 내가 이쁘고 똑똑하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아버지가 자녀에게 콩깍지가 씌었나 보다 싶어서 그냥 아버지의 장단에 맞추어드리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큰 사고를 당해 대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 다행히 의식이 돌아오고 식사도 잘하셔서 안심하던 차, 아버지께서 갑자기 나를 부르시며 하실 말씀이 있다고 했다.

    “네 오빠만 신경 써주고 네 뒷바라지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

    나는 각자 삶의 몫이 있으니 그런 말씀은 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버지 덕에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바르고 꿋꿋하게 살지 않았느냐며 위로해 드렸다.

    아버지는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버지가 내게 “너는 나 닮아서” 하시던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버지가 내게는 칭찬에 인색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나를 무척 신뢰하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는 나를 닮아서”라는 말 속에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이 담겨 있었음을.

    진리를 영접한 후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내가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가끔씩 자문해 본다.

    “저 공주는 우리를 닮아서 성품도 좋고 마음이 따뜻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연합하려 늘 애쓰는 모습이 있지요. 공주에게 상을 많이 예비해야겠어요.”

    하늘 부모님께서 나를 보시고 당신을 정말 많이 닮아서 마음에 쏙 드는 자녀라고 인정하실까, 아니면 당신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녀라 안타까워하실까? 엉뚱한 생각과 게으른 모습에도 나는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늘 기도하며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쏙 빼닮은 모습으로 변화하려 노력해야겠다.

    나를 무한히 지지해 주시는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차오른다.
    더 보기
    뒤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