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건강하고 온순했습니다. 병치레가 적었고 예방접종 후에도 접종열 없이 지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런 첫째가 난데없이 열이 오르고 잠만 자기에 왜 그런가 싶어 병원에 가보니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병에 걸렸으니 울고불고할 법도 한데 한 번도 칭얼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정도로 잘 아프지도, 까탈스럽게 굴지도 않는 아이였습니다.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곯아떨어지고, 분유 먹고 트림을 빼먹어도 한 번도 게우지 않던, 육아 난이도 ‘최하’의 아이였다고나 할까요.
터울 지게 찾아온 둘째도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웬걸요. 집에 온 첫 달 동안 밤만 되면 알람이라도 맞춰 놓은 듯 악을 쓰고 울어댔습니다. 이웃들에게 불편을 줄까 봐 갖은 방법으로 달래 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한 시간은 지나야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며 밤이 찾아오는 게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계속 안고 있다가 잠들었다 싶어 내려놓으면 바로 토끼잠에서 깨어 눈을 떴습니다.
3~4개월간은 낮에도 자주 울고 잘 달래지지 않았습니다. 첫 감기도 일찍 찾아오고, 얼마 전에는 중이염에 걸려 항생제를 먹였습니다. 분수처럼 분유를 게워내는 일도 잦았습니다. 소화기관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이른바 ‘이른둥이’에게 자주 있는 일이라는데 똑같이 일찍 태어난 첫째는 그러지 않았기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던 어느 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첫째는 안 이랬던 거 같은데, 얘는 왜 이렇게 우는지 모르겠어.”
“첫째 때 생각난다. 첫째도 많이 울었잖아. 기억나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당시 남편은 일 때문에 주말에만 아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남편도 기억하는 아이의 모습을 저는 새까맣게 잊었던 것입니다.
‘첫째도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아이가 하도 울어서 저도 같이 울며 친정엄마에게 전화했던 일, 잠들지 않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 가던 일, 밤새 보채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달려갔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쉽게 키웠다고 생각했던 첫째도 둘째처럼 저를 힘들게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은 순한 아이’라는 기억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둘째도 엄마 속 한 번 썩이지 않은 착한 아이로 기억되겠지요.
성경은 구원받을 하늘 자녀들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르는,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알려줍니다(계 14장 4~5절). 처음 이 구절을 봤을 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우리 스스로가 완성품이어서 천국에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완성품으로 봐주시고 그리 불러주시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시기에 점도 흠도 없는 자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요.
저희가 당신을 아프게 한 숱한 시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새카맣게 잊으시고, 저희의 작은 수고와 정성은 훨씬 크고 기특하게 여기시어 넘치는 상급을 허락해 주시는 하늘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