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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향 생각

2025.0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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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에서 자란 나는 달리 고향이라고 추억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고향’ 하면 왠지 도시에서 벗어난 시골 풍경에 풀내, 정겨운 향취를 머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향처럼 옛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엄마의 잔치국수다.

    고민거리도, 급한 일도 없이 일어나서 노는 것이 전부였던 때, 따스한 방에서 인형 놀이를 하다가 느지막한 오후가 되면 엄마가 차려주는 잔치국수를 먹었다. 향긋하고 맑은 국물에 내게 딱 맞는 양만큼 가지런히 담긴 소면, 간단하게 볶은 김치와 정갈하게 채 썬 지단, 김 가루를 올려 마무리한 잔치국수는 수수하지만 온몸을 따듯하게 덥히는 맛이었다.

    지금도 일상의 흔적이 소란하게 마음에 배어들면 괜히 엄마에게 잔치국수를 해달라고 조르곤 한다. 엄마의 잔치국수 한 입이면 단번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신나게 놀다가도 “이리 와, 밥 먹자” 하는 엄마의 말에 달려가던 그 기억이 내게 고향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엄마 잔치국수가 제일 좋아”라는 내 말에 엄마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했다. 세상의 전부가 엄마였던 시절로 돌아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온기가 번지는 기분. 이것이 고향에서 얻는 마음인가 짐작해 본다.

    어떤 음식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강렬한 맛뿐 아니라 그 음식과 어우러진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잔치국수뿐 아니라 아빠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통닭, 한여름에 선풍기 앞에서 먹던 수박, 비 오는 날 부쳐 먹던 김치전까지…. 특별한 추억 속 음식에는 꼭 함께한 가족이 있었다.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좋은 음식으로 기쁜 날을 기념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매일 모이던 순간의 기억이 나를 그때의 포근함으로 이끈다.

    추억이 담긴 음식을 통해 그려보는 고향의 감각은 자연스레 하늘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망각의 너울을 써서 하늘 본향을 기억할 수 없는 우리에게 하늘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말씀의 양식으로 우리 마음을 하늘 고향의 정취에 물들게 하신다. 기억 저편의 찬란했던 나날을 들으며 오늘도 말씀에서 삶의 위로를 얻는다. 그래서인지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향기가, 사랑 가득 담긴 음성으로 말씀 주시는 어머니의 향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하늘 고향으로 돌아가 하늘 가족들이 한 상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을 그날, 하나씩 수놓아 갈 추억을 그려본다. 오늘도 고향 생각에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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