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의무병으로 입대해 의무부사관으로 전역했습니다. 처음에는 의무실이 따로 있어서 다른 보직보다 규례를 수월하게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원했습니다. 응급구조과에 재학 중이었지만 의무병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귀한지 28개월의 군 복무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저희 자대에는 의무병이 저를 포함해 두 명밖에 없어서 군의관을 보조하며 환자 접수, 응급처치 등 갖가지 업무를 맡아야 했습니다. 부상이나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 몸에 큰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는 병사들을 마주하며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관심과 위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군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돌보는 의무병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듯 저도 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텄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사랑을 주신 것처럼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어머니 교훈대로, 인사하기, 미소 짓기 등 작은 행동에서부터 주는 사랑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소속이 달라 잘 알지 못하는 부대원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왜 자기에게 인사하냐는 듯 정색하며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잘해주려고 다가갔는데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반응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상대가 제 노력을 알아주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인사하고 미소 지었습니다. 어느새 저는 ‘친절한 의무병’으로 부대 내에 알려졌습니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던 병사가 먼저 알은체하며 인사하는가 하면 의무실을 찾았던 환자들이 다른 병사들에게 저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동기 의무병의 변화였습니다. 저보다 2개월 먼저 들어온 동기는 제가 좋은 평가를 받자 저를 다소 경계하는 듯했습니다. 저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언급하거나 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해 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지만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랬던 동기가 나중에는 저와 제일 가까운 사이가 되어 제 입장을 헤아려 주었습니다. 예배일에 근무가 잡히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거나 평소 제 의견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누가 우리 교회를 안 좋게 이야기하면 자기가 나서서 “하나님의 교회는 착한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라며 옹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선한 행실과 주는 사랑을 실천했더니 하나님께서 부대원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주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한 사건을 통해 제 인생에 중요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 당직병이 급한 환자가 있다며 취침 중이던 저를 깨웠습니다. 따라가 보니 당직사령님이 “심장이 이상하게 뛴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보자고 대화하는데 눈앞에서 당직사령님이 쓰러졌습니다. 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24시간 운영하는 의무실에 전화해 지시대로 제세동기를 작동시킨 후에야 당직사령님의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제 손을 꼭 붙잡고 고맙다고 말하는 당직사령님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간부들과 병사들 모두 제가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추켜세우며 칭찬했습니다. 이 일로 군단장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구나’ 하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군의관님이, 당직사령님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제가 꼭 필요한 조치를 제때 했기에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면서요.
영적으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많았을 텐데 그동안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나 뜨끔했습니다. 앞으로는 위기에 처한 영혼을 소생시키는 영적 의무병, 영적 응급구조사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영적 의원이신 하늘 아버지를 따라 그 일에 헌신하여 영혼을 살리는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