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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짓대와 콩 주머니

2024.0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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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년 시절, 나의 고향은 겨울에 어찌나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지, 자고 나면 눈이 가슴팍까지 쌓였다. 우리 여섯 남매는 아버지를 쫓아 눈 치우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연탄 한 장이 온기의 전부였던 집 안은 언제나 추웠고, 따뜻한 물도 근근이 데워서 써야 했다. 세수도, 설거지도, 빨래도 다 찬물로 해야 했다. 지금처럼 고무장갑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할 때마다 손발이 꽁꽁 얼었다. 김장철이면 냇가에 뜨거운 물을 놔두고서 손을 녹여가며 얼음을 깨고 배추를 씻었던 기억이 난다.

    여섯 남매 중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탔던 나는 급기야 동상에 걸렸다. 늦은 봄까지 퉁퉁 붓고 가려움증에 시달리던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심했다.

    이런 내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동상에 좋다는 가짓대와 콩을 구해오셨다. 가짓대를 푹 끓여서 그 물에 손과 발을 담그게 하셨고, 주머니를 만들어 메주콩을 가득 담아 두 발을 깊숙이 넣게 하고는 발목에 꽁꽁 묶어주셨다. 하지만 그 상태로 자는 일은 몹시 불편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끈이 풀려 콩이 다 쏟아져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밤잠을 설치시며 콩을 주워 담아 내 발에 다시 묶어주셨기에, 귀찮고 싫어도 아버지의 정성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마다 가짓대 끓인 물에 손발을 담그고 발에 콩 주머니를 묶고 지냈는데, 어느 겨울부터 동상이 재발하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평생 겉으로 표현한 적 없이 무뚝뚝하게 사셨던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시며 “이제 된 것 같다”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던 것이다.

    어느새 나도 일흔을 앞두고 있다. 세월만큼 내 손발도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사람들은 고생 한번 안 해본 손 같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내 손을 억지로 가짓대 끓인 물에 넣고, 밤새 콩 주머니를 발에 묶어주시던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이 생각나 코끝이 찡해진다.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그때 아버지의 정성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얼마나 큰 사랑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문득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늘 밤잠을 뒤로하신 채 기도해 주시고, 전도하시며 진리책자 써주신 하늘 아버지가 떠올랐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외롭고 힘든 복음의 길을 자녀들을 향한 사랑으로 묵묵히 걸어가 주신 아버지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작은 것이라도 순종하여 천국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소망한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제 된 것 같다”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실 그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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