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어 매년 힘겨운 여름을 보냈다.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열고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더위를 내쫓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린 장판이 쩍쩍 소리를 질렀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언니와 나는 한 대밖에 없는 선풍기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보다 못한 엄마가 중재에 나서면 우리는 선풍기를 회전으로 해놓고 바람이 잘 드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했다.
더워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옆에서 자던 엄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엄마, 나 어떻게 자, 일어나 봐.”
대답이 들릴 때까지 계속해서 엄마를 불렀다. 막내딸의 투덜거림에 노곤한 몸을 일으킨 엄마는 내가 잘 때까지 부채를 부쳐주었다.
엄마는 한번 잠들면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밤마다 끈질기게 엄마를 깨웠다. 엄마를 부르고 옆구리를 찔러도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 배 위에 누워도 보고 전화기 버튼을 눌러 소리를 내기도 했다. 결국 엄마가 눈을 뜨면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엄마가 부채질해 줄 때 시원한 바람도 좋았지만 솔솔 풍기는 엄마 냄새가 더 좋았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이 신이 난 나머지 빨리 눈을 감지 않고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 무렵 엄마는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언니와 나를 깨워 학교에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 온갖 집안일에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살림을 꾸려갔다. 엄마의 하루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더 사랑받기를 바랐다. 그래서 늦은 밤 피곤한 엄마를 붙잡고 떼를 쓰며 부채 바람으로 내 마음을 풀어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한 손으로 팔베개를 해주며 내 조잘거림을 다 들어주었다. 엄마의 사랑이 밴 그날들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벅찬 하루 일과로 지쳤을 엄마를 위로하기는커녕 나 좋자고 엄마의 휴식을 방해하고 희생을 요구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야 후회로 남는다. 엄마에게 당시 이야기를 물어보면 그런 적이 있었느냐며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얼마 없는 휴식을 전부 자식에게 내어주고도 당연하게 여긴 엄마의 사랑에 코끝이 찡해진다.
자녀를 향한 사랑으로 점철된 엄마의 나날은 영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늘 어머니의 희생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어떠할까. 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이 무사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 주시고 자녀들의 타는 심령을 식혀주시려 쉼 없는 기도로 부채질해 주신다. 자녀들을 내 삶의 전부, 관심의 전부라 하시며 베풀어주시는 무한한 사랑이 묵직한 울림이 되어 가슴 깊이 번진다. 이제는 하늘 어머니의 답답하신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드리는 의젓한 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