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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소식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들

2023.0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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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옥천고앤컴연수원에서 열린 예비 청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행사장에서 해병대 부사관, 공군 입대를 목표로 삼은 또래 자매님들을 만났습니다. 군대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매님들의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습니다. 진로를 고민하고 다양한 미래를 상상하면서도 군인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나는 그런 비전을 갖지 못했을까? 나도 만약 군인이 되면 이루어야 할 복음 사명이 있겠지?’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가슴속에서 불꽃처럼 피어오른 그날 이후, 육군 부사관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습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체력 검정과 필기시험을 무사히 합격하고 마침내 군인이 되었습니다. 아니, 진짜 군인이 되기 위한 기초군사훈련에 들어갔습니다.

    18주에 달하는 훈련 기간 중에는 외출이 불가능하고 휴대폰은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상부의 허가를 받더라도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기 쉽지 않고, 자유롭게 기도하거나 내가 원할 때 성경 말씀을 살피기도 어려웠습니다.

    어떻게든 훈련만 수료하면 자유를 얻는다는 생각 하나로 힘들고 통제된 생활을 버텼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교육을 마치고 부사관으로 임관해 화천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습니다. 바쁘고 고단했던 일과들이 저로 하여금 하늘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해주었다는 것을요. 유격훈련 마지막 날, 15킬로그램가량의 군장을 메고 저녁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행군할 때, 잃은 자녀 찾아 홀로 산길 들길을 걸으셨을 아버지의 심정이 헤아려졌습니다. 영하 15도의 날씨에 야외 훈련을 받던 날에는 귀가 떨어지고 발가락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고통으로 물든 아버지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야간 당직이나 철야 훈련으로 2~3시간밖에 못 자고 감기는 눈꺼풀을 손으로 밀어올리며 근무하면서는, 밤에 책자를 쓰시고 낮에 석수 일을 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절로 그려졌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버겁게 느껴져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바르고 성실하게 생활하려 노력했습니다. 주는 사랑, 양보, 겸손, 인내, 희생 등 어머니 교훈을 실천하면서 공용 공간 정리하기, 문서 세절함 비우기, 먼저 인사하기, 짐 나르기 등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들을 매일같이 해나가다 보니 훗날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착실하다, 다른 사람들도 너처럼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칭찬을 주위에서 듣기도 했고, 사단장 표창과 교육 우수상 등의 수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복음의 결실도 허락받았습니다. 부대 차량으로 같이 출퇴근하는 동료 부사관이 메시아오케스트라 온라인 연주회를 보고 감동해 하나님께로 나아왔고, 틈틈이 성경 말씀을 전한 이웃 두 분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투복과 전투화가 제법 익숙해진 지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장 13절) 하신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제한적인 환경에서 절기를 지키고 복음을 전하기가 여전히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기에 불가능은 없음을 몇 번이나 경험하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남은 군 생활 동안, 가족과 고향을 떠나 힘든 환경 속에 묵묵히 복무하는 주위의 군인들에게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에게 군 복무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축복된 삶을 만들어가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화천 지역의 작은 예배소에 달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새노래가 이어지고 생명수 말씀을 들으려는 영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아버지 어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상상만 해도 설렙니다. 그 모든 소원을 엘로힘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줄 믿고 복음에 헌신하겠습니다. 하늘 자녀를 살리시려 온 생애를 바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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