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쭉 해온 생각이지만 진짜 그 길을 갈 수 있을지,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두렵고 망설여졌습니다. 입대를 앞두고는 그 마음마저 사라질까 걱정됐습니다. 전역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오히려 군대에서 갖가지 경험을 쌓으며 스스로 믿음을 지키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하며 꿈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입대 초반에는 자신과의 싸움이 컸습니다. 일과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온전히 제 선택에 좌우됐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을 피우자면 한없이 늘어질 수도 있었고, 낮에 힘들게 근무한 만큼 가만히 휴대폰을 보며 쉬면서 보상(?)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되려면 달라야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사소하게 넘길 수 있는 시간마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편하게 지내려는 습관을 버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요.
겨울은 연약했던 제 믿음을 굳게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8월 군번이라 가장 더울 때 입대했는데 그런 날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군대의 추위는 혹독했습니다. 특히 혹한기 훈련 때는 야외에서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추위 때문에 해가 지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텐트를 치고 침낭에 핫팩도 깔고 자지만 일어나면 입김 때문에 텐트 천장이 다 얼어 있었고 기관지가 말라서 목도 머리도 아팠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과 감정을 마주하며 하늘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한기 훈련이라야 1년에 한 번, 5일간의 일정이었고 불침번 근무도 많아봐야 이틀에 한 번이었습니다. 저는 잠깐이지만 아버지께서는 열악한 여건에서 일상적으로 그런 추위와 피로에 맞서셔야 했다고 생각하니 그 희생이 조금씩 와닿았습니다.
겪어보지 않아 몰랐던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제 행동도 점점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자로서 책임감이 싹텄다고 할까요. 일과 중에 생기는 여유 시간이나 일과 후 공부 연등 시간을 활용해 진리책자를 읽으며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평소에는 하늘 어머니께서 본보여 주신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아직 군 생활이 여러모로 낯선 후임들이 실수를 하면 더 의기소침해져서,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서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당시의 저를 떠올리며 힘이 될 법한 말로 다독였습니다. 그런 일들이 조금씩 쌓여 제게 다시 좋은 말이 돌아오니 왜 하나님께서 선한 말과 행동을 하라고 하셨는지 알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사랑인 새 언약 유월절도 주변에 전했습니다. 먼저는 친한 선임에게 알렸습니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혹시 거절하면 어쩌지’, ‘사이가 틀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주시리라 믿으며, 선임에게 유월절을 함께 지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선임은 바로 “그래. 안 지킬 이유가 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흔쾌히 동의하니 오히려 제가 당황해 몇 번이고 다시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모든 길이 열리는 것을 한번 경험하자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감 있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유월절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축복을 받으러 시온에 나아왔습니다.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군대’라는 환경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마음이 있으니 외출이나 외박 때 같이 교회를 방문했고, 가족 같은 분위기와 형제자매의 따듯한 관심에 감동하며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제일 처음 말씀을 들은 선임은 후임 두 명과 한날에 새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 제가 직접 누군가에게 진리를 알렸을 때 상대방이 마음을 움직여 구원의 길로 나아오는 일이 처음이라 더욱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저와 함께해 주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영의 형제들이 많아지자 책임감이 더 커졌습니다. 막 움튼 새싹 같은 형제님들이 계속해서 말씀을 상고하고 하나님의 축복 안에 거하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 어머니께서 한 자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애타하시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려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도 이렇게 마음 다해 사랑해 주신다 생각하니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힘이 솟아났습니다.
시온 형제님들의 응원과 위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상부의 허가를 받아 주말에는 부대 인근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저희를 맞아주는 형제님들의 환한 표정과 배려 담긴 행동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닮은 사랑을 느끼노라면 행복해서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와 함께하는 부대원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거창한 물질이 아니라 물 한 컵이 필요하다지요. 전국 각지 다양한 사람이 계급으로 인한 수직적인 환경에 모여 늘 긴장한 채 생활하는 분위기에서 부드러운 어머니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 가닿아 위로가 되니 기쁘고 다행입니다.
새노래 중 “우리의 크나큰 죄는 작게 여겨주시고 우리의 작은 정성을 크게 여겨주시는”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마치 제 군 생활을 함축한 가사 같습니다. 돌아보면 부족한 점도 많았는데 말씀대로 실천하려 했던 작은 노력을 크게 여기시고 넘치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부대를 떠났지만, 18개월간 얻은 깨달음과 절절히 느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가슴에 가득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기에 제가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받은 은혜가 넘쳐, 이를 잊지 않고 어디서든 보답하는 생애를 살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을 제 방식이나 성향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께서 행하신 대로 올곧게 전하는 아들, 하나님의 본을 온전히 따르는 선지자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