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냐. 박 서방 운전 조심히 하라고 혀라. 따땃허게 보일러 때놨응께 오던 질로 바로 자라들. 피곤해서 우짠다냐.”
친정과 멀리 떨어져 사는 저희 가족은 고향에 내려갈 때면 비교적 차가 덜 밀리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 출발합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부모님의 밤잠을 설치게 합니다. 죄송한 마음에 먼저 주무시라고 말씀드려도 매번 뜬눈으로 저희를 기다리십니다. 특히 아버지는 누웠다가도 자동차 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나신다고 하니 밤을 새울 수밖에요.
사실 아버지는 저희가 친정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분주합니다. 손주 좋아하는 삼겹살 사러 장에 가고, 사위 몸보신해준다며 마당에 솥 걸어놓고 며칠 동안 곰탕 끓이고, 딸 준다고 홍시 만들어놓고, 쌀 도정하고, 장대로 대추 따놓고…. 저희가 머무는 내내 그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챙겨주고도 부족한지, 집으로 돌아갈 때는 그간 아껴두었던 먹거리들을 트렁크에 한가득 실어주십니다. 남편은 우리가 기둥뿌리까지 뽑아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엄마 못지않게 사랑을 베풀어주시는데도 저는 아버지보다 엄마를 찾을 때가 많습니다. 전화를 해도 엄마부터 찾고 오랜만에 만나면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선물을 사도 같은 여자라고 엄마 것을 더 사게 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들도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 품에 안기길 좋아합니다. 아버지도 엄마와 같은 사랑을 주시는데 다들 엄마만 찾으니 서운하실 법도 하건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십니다.
“나는 괜찮여. 니 엄마한테 잘혀라!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나도 느그 엄마 없이 못 산다.”
예전에 친정집 근처에 사는 작은언니가 동영상을 하나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삼복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밭에 비료를 치고 있는 영상이었습니다. 화면 속의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노구에도 힘 있게 비료를 뿌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짠하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여러 감정이 올라와서였습니다. 언니가 농사일은 이제 남에게 맡기자고 했다는데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답니다. 아직 버틸 힘이 있으니, 내 자식 먹일 쌀은 직접 농사지어야 한다면서요.
자식들이 걱정이라도 하면 아버지는 그저 싱글벙글 웃습니다.
“니 엄마랑 니들 조금이라도 고생 안 할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혀. 이 비료 바구니 생각나냐? 니들 어릴 때 남의 논에 비료 쳐주고 품삯 받아서 과자 사갖고 여그다가 담아 왔제. 허허허.”
저희를 안심시켜주는 말씀과 다르게 아버지의 머리는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는 구부정해졌습니다. 눈가에는 주름이 잡혔고요.
철부지들에게 준 사랑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자식 향한 외로운 짝사랑을 이어가시는 아버지. 이제는 압니다. 추운 겨울이 와도 제 마음이 봄처럼 따뜻한 것은 뒤에서 나를 포근히 감싸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 때문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