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이불을 적시는 식은땀에 한기를 느끼고 눈을 떴다. 역시나, 수학여행을 떠난 큰아들의 부재가 어김없이 몸살로 나타났다.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아들과 나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누군가 한 사람은 꼭 아팠다.
아들은 태어난 지 백일이 되었을 즈음,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려 애를 태웠던 것만 빼면 건강에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육아 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직하자마자 아이가 거짓말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부터 홍역, 수두까지…. 돌도 안 된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고,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가 아프다며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전화 때문에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었다. 결국 나와 아들, 시어머니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퇴사하고 아이와 함께 있게 되니 아들은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해졌다.
3년 뒤 둘째가 태어났다. 출산 때문에 나와 떨어진 큰아이는 곧장 수족구병에 걸렸고,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해 내가 병원에서 병간호를 하는 동안에는 성홍열을 앓았다. 그때 깨달았다. 우연일지 몰라도 큰아이는 엄마인 나와 떨어지면 아프다는 것을. 이후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큰아이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아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러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친정엄마가 수술로 입원하게 됐다. 내가 엄마를 간호해줘야 했는데 아이와 떨어져야 해서 살짝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아이가 여태껏 건강했으니 괜찮으리라 믿고 지방에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에게 열이 많이 난다고. 신종 플루가 유행하던 시기라 불안한 마음에 급하게 친정 엄마를 언니에게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기력 없이 누워 있기만 하던 큰아이는 내가 곁에서 밤을 지새우고 나서야 열이 내렸다. 큰아이와 떨어져 있으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아이는 성장했고 더 이상 엄마와 떨어진다고 아프지 않았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우습게도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제는 엄마 없이도 잘 있을 아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여 아프지 않을지 가슴을 졸여서일까.
“엄마!”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손에 선물이라며 효자손이 들려 있다. 효자손만 봐도 몸살 기운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그저 아들이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 내게는 특효약이다. 아들에게 엄마인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