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유월절을 며칠 앞둔 저녁이었습니다. 친정아버지와 언니들, 남동생 모두가 참여하는 가족 채팅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습니다. 아버지가 올린 당신의 사진이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겨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 눈가에 깊이 팬 주름 사이로 12년 전 떠나보낸 엄마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묻어났습니다. 그때 작은언니가 엄마와 아빠의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혹시라도 아버지가 힘들어할까 봐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꺼내지 않았는데, 금기를 깨듯 언니가 사진을 올리자 그동안 억지로 꾹꾹 눌러놓았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저마다 꺼내놓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밤늦도록 울고 웃으며 엄마에 관한 추억과 서로에게 고마웠던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진리 안에 있으면서 입버릇처럼 “나중에 너거 엄마 만나면…” 하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할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을 확신하고 남은 생을 좀 더 즐겁게 보내시길 바랐습니다.
아버지는 매년 유월절이면 혼자 저희 집에 오셔서 함께 유월절을 지키십니다. 올해는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친정 근처에 사는 작은언니가 함께 와서 유월절을 지켰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작은언니가 천국 소망을 가지면 아버지에게 힘이 나는 말씀을 더 많이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딸 셋 중 가장 아들 같은 딸이라고 아버지가 늘 듬직해하셨으니까요.
작은언니에게 어떻게 유월절을 권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간단히 편지를 쓸 수 있는 플라워레터가 떠올랐습니다. 일단 온라인 꽃집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행복이 피어나는 꽃집’이라는 간판을 보며 배경음악을 듣다 보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꽃을 고르고 언니에게 뭐라고 말할까 고심한 끝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언니, 은하씨
어제는 잠 좀 푹 주무셨소?
온 가족 모두 꿈에서 엄마를 만났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소.
아빠의 사진을 보니 나이가 많이 드셨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기도 하였소.
이번 주 토요일, 아빠 혼자 오시게 말고 운전해서 같이 오시게.
함께하고 싶소.’
편지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쑥스러워 망설였지만, ‘늘 가까이 있어서, 공기처럼 익숙해서 가족을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캠페인 문구가 가슴에 와닿아 용기를 냈습니다. 잠시 후 언니에게 받은 답장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며칠 뒤, 침례 받은 지 10년이 지나 언니는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버지와 함께 온 언니는 세족 예식을 위해 발을 미리 정돈하고 왔다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너무나 예쁜 모습으로 예식에 참여했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유월절을 지키러 오는 길이 외롭지 않아서 너무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언론 기사, 성경책으로 아무리 전해도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던 언니가 플라워레터에 마음이 열려 유월절을 지키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여정에 참으로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재생 가능한 동영상 설교, 교회와 진리 말씀이 일목요연하게 소개된 언론보도자료부터 굳게 닫힌 마음 문을 두드리는 ‘플라워레터’, 지친 마음에 위로와 위안을 주는 ‘사막에 뜨는 별’, ‘새노래’ 등 유튜브 영상까지. 요즘처럼 사람들을 자주 만나기 쉽지 않은 때, 먼 거리에 사는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귀한 전도 도구들입니다. 그와 같은 선물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고르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아들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가면 집에 장난감 자동차가 많은데도 아들은 또 장난감 자동차를 고릅니다. 다른 장난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매번 자동차만 고집하는 아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정작 제 자신도 익숙한 전도 도구만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플라워레터를 통해 돌처럼 굳어 있던 언니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생명의 절기를 지키게 허락해 주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언니와 친정아버지가 함께 유월절을 지키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 열심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천국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 영혼도 외롭지 않도록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며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