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까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학교에 다니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중교통의 매운맛을 보았다. 통학할 때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는데 버스는 늘 미어터졌다. 못 탈 때도 다반사였다. 정류장에 서 있는 학생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눈은 버스가 어디에 멈출지를 훑고, 가장 먼저 탈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려고 발이 나갔다. 치열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1학년 때, 넋을 놓고 있다 인파에 떠밀려 생존을 위협받고서야 경쟁의 세계로 함께 뛰어들었다. 압사 사고가 왜 일어나는지 십분 이해됐다.
대학생이 되었다. 학교까지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왕복 3시간 정도. 고교 3년 동안 나름의 노하우를 쌓은 터라 어디서, 어떤 타이밍에 타고 내려야 하는지를 익혔고, 버스나 기차가 어느 위치에 멈출지까지 예상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딜 가든 스마트폰 어플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노선을 파악하는 데 도가 틀 무렵,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아, 서울은 역시 쉽지 않았다. 버스나 지하철에는 나보다 높은 레벨의 전문가들이 수두룩했다. 출근길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사람들로 넘치고 미어터지는 대중교통 안은 고요했지만 다들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부딪히기도 하고 발을 밟거나 밟히기도 하는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라는 일상의 대화는 듣기 쉽지 않다. 인문과 문화적 공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근접학(近接學)’에서는 팔을 뻗는 범위만큼이 개인적 공간이라 그 안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대개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팔은커녕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공간도 없는 지하철 안에서는 개인의 영역이 현격히 줄었다. 하지만 상대방과의 거리가 가깝다고 마음까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 듯했다.
하루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지 못한 채로 사람들 속에 짓눌려 있었다. 어느 순간 열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휘청대다 앞 사람의 발뒤축을 밟아버렸다. 화들짝 놀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여성은 나를 흘긋 보더니 인상을 쓰고 홱 고개를 돌렸다. 문제는 그 후였다. 여성은 염색한 머리를 넘겨대며 팔로 자꾸만 나를 쳤다.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던 터라 이후 그 머리칼이 보이면 자리를 옮겨 다녔다.
매일 한 시간도 안 되는 출근길에서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써버린 날들이 많았다. 하루의 시작이 이래서인지 내면이 평온하게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렸다. 자칫 경쟁에 밀려 차량을 여러 대 놓치기라도 한 날이면 절망감마저 들었다.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기가 쉽지 않던 어느 날, 침묵으로 가득 찬 버스 안 라디오에서 진행자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직장인 여러분, 출근길로 바쁘시죠? 피곤하시겠지만 오늘도 힘내세요.”
신기하게도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에 뭔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지하철로 몸을 옮긴 뒤 스마트폰을 열어 짧은 영상을 시청했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행복 공식’. 이타적인 마음으로 타인의 행복을 비는 사람들에게 행복감·공감도·유대감은 높게, 불안감은 낮게 나타난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던 그때, 문제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시험 삼아 ‘저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길, 좋은 일이 있길’ 하고 행복을 빌어주었다.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꽉 끼는 출근길, 갑갑한 마스크 속에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놀랍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나도 모르게 마음의 여유를 잃을 때면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기보다 주위를 둘러보며 행복의 공식을 떠올린다.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생각을 바꾸면 금세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타인에게 빌어준 행복이 내게 돌아온 것일까. 학창 시절 외운 공식들은 거의 까먹었지만, 이 공식은 두고두고 기억하며 꺼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