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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혼자서도 잘해요

2021.09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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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작년이었던가, 스투키 화분을 샀다. 무언가를 키우는 데 소질은 없지만 길쭉한 모양새와, 다육 식물이라 가만히 놔둬도 잘 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지나 새순도 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귀여운 싹이 텄다는 후기들을 찾아보며 내 화분에 찾아올 새 식구를 기다렸다. 그런데 새순이 나오기는커녕 더 말라가는 것 같았다. 흙을 파보니 뿌리가 거의 죽은 것처럼 짧았다. 뿌리도 짧은데 서로 너무 다닥다닥 모여 있나 싶어 회사 동료들에게 몇 뿌리를 나눠주고 두 개만 다시 심었다.

    다시 기다리기를 몇 달, 스투키를 얻어간 동료가 새순이 났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거기서 또 새싹이 나고 분갈이를 할 때까지 내 스투키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전부 꺼내고 물에 담가 뿌리부터 키웠다. 최근에 다시 화분으로 옮겨주면서 삐죽빼죽 겨우 고개를 내민 새 뿌리를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식물 하나 키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다른 애들은 다 잘 크는데 너는 왜 이렇게 안 크니?”

    애꿎은 화분에 대고 한탄하다가 움찔했다. 내게 하는 말 같아서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키가 작았다. 친구들과 친척 동생들이 다 클 때도 여전히 작았다. 키 작은 아이의 부모님들이 으레 그렇듯, 부모님은 운동부터 먹거리까지 내 성장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정작 나는 모든 게 귀찮았다. 부모님의 노력이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 이유다.

    타지에서 혼자 사는 지금도 생활 습관에 대한 엄마의 애정 섞인 잔소리는 여전하다. 한 번은 이제 다 컸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나뿐인 딸이 떨어져 있는데, 몇 살이든 간에 신경 안 쓰이는 부모가 어디 있어?”

    성인이 된 나를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하는 엄마가 신기했다. 스스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을 나이가 되면 부모님도 아무 걱정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모든 관심은 나였고, 내가 잘 지내도록 하는 게 엄마의 일이었다.

    문득 스투키가 새순을 내지 않은 건 내가 그만큼 정성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스투키를 대하는 자세는 방치나 다름없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안 자라냐고 타박하기까지 했으니…. 아무리 알아서 잘 큰다지만 관심이 필요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을까.

    사실은 나도 여전히 부모님이 필요하다. 처음 자취하던 때,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설렘의 유통기한은 한 달이었다. 이후로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휴일에 늘어질수록 다음 날 더 피곤했고,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캄캄하고 공허한 방이 싫었다. 그 무렵 부모님이 찾아오셨다.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금껏 나는 혼자서도 잘 산다고 자신했다. 돌이켜 보면 내 삶 곳곳에 부모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뒤에서 든든히 지지해 주신 부모님 덕에 단단한 내면의 성장을 이뤘다. 넘어졌을 때 털고 일어나는 법, 타인의 슬픔을 덜어주는 법, 고마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법 모두 부모님께 배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나무 같은 그 사랑을 본받고 싶다. 내 마음에도 진실한 배려와 사랑의 싹이 움트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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