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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벼락치기

2021.07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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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단 기간에 최대 효과를 내는 공부법, 벼락치기. 학창 시절에 벼락치기를 안 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결과가 좋게 나오면 짜릿함이 더해져 벼락치기의 유혹은 쉽게 떨쳐낼 수 없게 된다. 나도 어려서부터 벼락치기 예찬론자였다.

    벼락치기는 조선시대 선비들도 과거 시험을 준비할 때 애용한 전략이라 한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벼락이 섬광을 번쩍이고 순식간에 사라지듯이 공부한 내용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단시간에 많은 분량을 습득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면 시간이 부족해지고, 시험 당일에 기억력이 저하되어 시험을 그르치기도 한다. 내가 경험했기에 부작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내 딸도 벼락치기 공부법을 애용해 왔다. 부작용을 몸소 겪은 나로서는 딸이 그렇게 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도 꾸준한 거 이기는 장사 없다. 닥쳐서 공부하면 나중에 힘들어!”

    “아, 나중에 해도 돼요. 시험이 코앞에 닥쳐야 집중이 잘되거든요.”

    딸아이가 초·중학교 때는 벼락치기를 해도 점수가 곧잘 나왔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공부할 분량이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친구들의 꾸준하고도 열기 어린 노력 앞에, 벼락치기 학습법은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학업에 지치고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성적에 풀이 죽은 딸아이가 안쓰러웠다.

    한때는 나도 ‘미리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부모님 말씀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딸아이가 내 말을 안 들어도 내가 유구무언인 까닭이다. 유전자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벼락치기의 한계를 경험하고도 쉽사리 그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던 내가 한순간 공부법을 바꾸게 된 것은 엄마 덕분이었다. 미리미리 해놔야 편하다고 엄마가 곁에서 계속 조언해 주었기에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살이 되고 피가 될 조언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아들인데 엄마는 내가 습관을 바꿀 때까지 묵묵히 참고 기다려주셨다.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딸도 이제는 벼락치기 학습법을 고쳐가고 있다. 중간·기말고사가 다가오기 두 달 전부터 밤낮으로 시험을 준비한다. 벼락치기 할 때보다 성적도 상승 곡선을 긋고 있다.

    하루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갑자기 공부법을 바꾼 이유가 뭐야?”

    “아빠 엄마가 귀가 닳도록 얘기했잖아요, 닥쳐서 공부하면 힘들다고. 공부할 분량이 벼락치기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때 그 말이 떠올랐어요.”

    이제라도 습관을 고쳐준 딸아이에게 고맙다. 문득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곁에서 지켜준 부모님의 사랑이 생각난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는 나를 지켜보면서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철없던 나도 어느덧 아빠가 되어 부모님께 배운 사랑을 딸에게 물려주고 있다. 딸도 나중에는 내 마음을 이해하겠지. 사랑은 그렇게 물림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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