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속 마을에 마음씨 고운 부부가 살고 있었어요. 부부에게는 병아리 때부터 기른 ‘사일런’이라는 수탉 한 마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일런은 딱 한 번 짧은 울음소리를 낸 이후 줄곧 울지 않았어요. 부부는 울지 않는 사일런이 걱정되었지만 사랑으로 보살펴주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사일런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마을에 유일한 닭인 사일런이 우렁찬 울음소리로 아침을 깨워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거든요.
“아침에 울지 않는 수탉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뭐하러 계속 키워요?”
마을 사람들이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면 부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언젠가는 사일런이 침묵을 깨고 힘찬 울음소리로 우리를 깨워줄 날이 올 거예요.”
어느 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사일런이 달에게 물었어요.
“달아, 달아. 너는 왜 깜깜한 밤에만 나오니? 아침에 오면 밝은 세상을 볼 수 있을 텐데.”
달이 빙그레 웃으며 사일런에게 물었어요.
“그럼 너는 왜 멋진 소리로 사람들을 깨우지 않지?”
사일런은 마을 사람들이 했던 말이 떠올라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나는 내가 울고 싶을 때만 울 거야.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울기 싫어!”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에게 멋진 소리를 주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가 밤에 나와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밤에 나오는 이유가 뭐냐고?”
까만 눈을 반짝이며 묻는 사일런에게 달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어요.
“낮에는 내가 없어도 해가 온 동네를 환하게 비춰주잖아. 하지만 밤에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주위는 온통 깜깜한 어둠에 묻힐 테고, 사람들은 많이 불편하겠지? 해가 낮을 밝힌다면 나는 밤을 밝혀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야.”
달의 말을 듣고 있던 사일런이 부리를 삐죽였어요.
“치, 뭐야. 결국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거잖아. 난 싫어. 내가 왜 남을 위해서 일해야 해? 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거야!”
“살다 보면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
“그런 건 관심 없어. 이제껏 울지 않아도 주인님은 날 사랑해주시잖아. 앞으로도 쭉 그럴 테고.”
달은 뭔가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어요.
“난 자러 갈래. 그럼 안녕!”
사일런은 닭장의 횃대에 올라가 눈을 감았어요.
아침이 밝았어요. 해가 마을 구석구석 빛 가루를 뿌렸어요.
“여러분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 밝은 햇살이 내려앉아 이웃들을 깨우네요. 닭장에도 은빛 가루가 뿌려집니다. 단잠에 빠져 있던 사일런은 주위에 퍼지는 밝은 기운에 눈을 떴어요. 밤새 웅크렸던 날개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켠 후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닭장 밖으로 나왔어요. 아침 이슬이 내린 마당을 유유히 거닐며 밤사이 땅위로 올라온 지렁이를 찾아 풀숲을 뒤지는데 해가 인사를 건넸어요.
“안녕, 사일런. 잘 잤니? 일찍 일어났구나.”
“안녕. 내가 빛에 좀 예민하거든.”
사일런은 발아래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내려다보며 대답했어요. 해가 또 물었어요.
“너는 왜 아침에 울지 않니? 네가 울면 마을 사람들이 더 일찍 잠에서 깰 텐데.”
사일런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어요.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싫어해.”
사일런이 지렁이를 부리로 콕 집어서 삼키려고 했어요.
“아니야. 네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고 멋진데! 사람들을 깨우는 데 너만 한 소리는 없을걸.”
해의 말에 당황한 사일런이 부리 끝에서 꿈틀거리던 지렁이를 떨어뜨렸어요.
“내 울음소리가?”
“그래. 내가 빛으로 아침을 연다면, 너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사람들을 깊은 잠에서 깨워 하루를 시작하게 도와주지.”
들떠서 이야기하는 해와 달리 사일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 가득한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사일런은 처음 큰 울음소리를 내었던 날을 떠올렸어요. 그날, 따뜻한 햇볕이 드는 마당에 앉아 깜빡깜빡 졸던 사일런은 목이 간질간질해서 잠에서 깼어요. 콕콕 기침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죠. 사일런은 목을 쭉 빼고 양껏 숨을 들이마신 후 숨과 함께 소리를 질렀어요. 간질간질하던 목이 금세 시원해지며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닭장 근처에서 놀던 꼬마 아이 하나가 사일런의 소리에 놀라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꼬마의 울음소리에 사일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미안한 마음에 꼬마 주위를 맴도는데 울음을 터뜨린 꼬마의 형이 사일런 뒤로 와서 꽁지 털을 한 움큼 뽑아버렸어요. 깜짝 놀란 사일런은 수풀로 얼른 도망쳤어요. 하지만 짓궂은 꼬마들이 계속 쫓아다니며 사일런을 괴롭혔죠. 주인 아주머니가 꼬마들 장난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면 아마 사일런의 꽁지 털은 남아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날 이후 사일런은 꼬마들이 보이면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어요. 소리는커녕 숨소리도 내지 않았죠.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해가 계속 말했어요.
“사람들이 잠에서 깰 수 있도록 네가 도와주렴.”
“사람들은 나를 미워해.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나를 쓸모없는 닭이라고 했단 말이야.”
“그건 네가 자기들을 깨워줄 거라 믿었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하는 말이야. 이제라도 네가 멋진 목소리로 그들을 깨워준다면 오히려 너에게 고마워할 거야.”
사일런은 지렁이를 버려둔 채 닭장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해가 한 말을 곰곰이 되뇌었어요.
지붕 위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일런이 결심한 듯 목을 쭉 늘이고 마음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셉니다. ‘하나, 둘, 셋!’
“꼬 콕! 꼬 켁! 케켁켁!”
자기 소리에 놀란 사일런이 날개로 얼른 부리를 막았어요. 우렁찬 소리가 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목이 꽉 막혀서 괴상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죠. 구름과 수다를 늘어놓던 해가 깜짝 놀라 사일런에게 물었어요.
“방금 네가 소리를 낸 거니?”
사일런은 날개로 부리를 막은 채 고개만 끄덕였어요.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모르겠어!”
당황한 사일런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처음이라 그래. 연습하면 멋진 소리를 낼 수 있을 거야.”
사일런은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예전보다 사람들이 자기를 더 싫어하면 어쩌나 겁이 났거든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래.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겠다는 건 욕심이야. 내가 도와줄게. 한번 해보자.”
마침 과수원에서 일하던 부부가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왔어요. 대문을 들어서던 아주머니가 지붕 위를 보고 방긋 웃으며 말했어요.
“여보, 조금 전 들었던 소리가 사일런 울음소리가 맞나 봐요. 저기 위를 보세요.”
아주머니가 가리킨 곳을 올려다본 아저씨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어요. 아저씨는 모자를 벗어 쥔 손을 흔들며 사일런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린 네가 멋진 소리를 낼 거라 믿는다, 사일런!”
“제가 말했죠. 분명 멋진 소리를 낼 거라고요.”
“허허허!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았군요.”
마음씨 좋은 부부가 기뻐하며 집으로 들어가자 해가 말했어요.
“거 봐, 아주머니 아저씨도 네가 잘할 거라고 믿잖아. 두 분을 위해서라도 멋진 소리를 되찾아보자.”
아저씨 아주머니를 생각하며 사일런은 다짐했어요. 꼭 멋진 소리로 아저씨 아주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