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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반짝반짝 별토리나무 上

2021.0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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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고, 허리 어깨 무릎이야. 월동 준비하다가 할아버지 되겠다.”

    도토리를 잔뜩 입에 문 다롱이가 지친 얼굴로 중얼거립니다.

    “야, 우리한테 허리 어깨 무릎이 어디 있냐? 이 형님 하시는 말씀 잘 들어봐. 아이고, 머리 몸통 발 꼬리야. 겨우살이 장만하다 하루살이 되겠네!”

    커다란 알밤을 두 앞발에 들고서 기다란 꼬리를 씰룩이는 또롱이의 말이 우스워 다롱이가 큰 소리로 웃습니다.

    “와하하!”

    그러자 다롱이의 입에 가득하던 도토리가 우수수 쏟아져 나오고, 또롱이는 그걸 잽싸게 자기 입에 집어넣고 도망칩니다.

    “야, 너 거기 안 서? 내 도토리 내놔!”

    숲속의 콤비, 또롱이와 다롱이가 떠나고 나니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커다란 도토리나무가 보입니다. 이렇게 토실토실 살이 오른 도토리를 잔뜩 매달고 있으면 다롱이와 또롱이도, 넉살 좋은 멧돼지 부부도 와서 도토리를 맛있게 먹고 갑니다.

    꼬마 새 주주도 도토리나무를 찾아와 가지 위에서 낮잠을 즐깁니다. 주주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기지개를 켭니다.

    “아이, 정말! 저 다람쥐 형아들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예요? 잠도 못 자게.”

    뾰족한 부리를 댓 발이나 내밀고 툴툴거리는 주주를 도토리나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랩니다.

    “주주야, 깼니? 네가 이해하렴. 그래도 저 녀석들이 숲속 친구들을 웃게 해주잖니.”

    “전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 개그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높이 나는 새가 피곤해! 일찍 일어나는 새가 졸려. 저처럼요, 히히.”

    도토리나무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아 조그마한 날개를 앞뒤로 파닥이며 재잘대는 주주가 마냥 귀엽습니다.

    “그래, 일찍 일어나 높이 날아다니느라 피곤하고 졸린 주주야, 오늘도 벌레는 많이 잡았니?”

    “그럼요! 동쪽 숲에서 여섯 마리, 남쪽 숲에서 세 마리 그리고 북쪽 호숫가에서 지렁이를 세 마리나 잡았어요. 다 합해서… 열세 마리!”

    “와, 나날이 사냥 실력이 좋아지는걸?”

    열세 마리가 아니라 열두 마리지만, 도토리나무는 굳이 정정하지 않습니다. 뿌듯해하며 어깨를 으쓱대는 주주를 바라보는 게 즐거우니까요.


    “꿀꿀! 도토리나무 씨! 좋은 아침, 아니 좋은 점심이에요, 꿀꿀!”

    멧돼지 가족입니다. 뒤뚱뒤뚱하는 새끼를 다섯 마리나 이끌고 나타난 멧돼지 가족은 매일 이맘때 나타나서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죄다 주워 먹고 갑니다.

    “어서 오세요. 방금 다롱이와 또롱이가 다녀가서 열매가 얼마 없네요. 가지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주주야, 좀 도와주겠니?”

    도토리나무가 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 도토리를 떨어뜨립니다. 잘 떨어지지 않는 도토리는 주주가 발로 차서 떨어뜨리고요.

    “야호! 하늘에서 도토리 눈이 내려와! 꿀꿀!”

    주주는 멧돼지 가족을 볼 때마다 도토리만 먹고 어떻게 저리도 살이 찔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주주가 그러든 말든, 새끼 돼지들은 눈처럼 쏟아지는 도토리 속에서 신이 나서 엉덩이를 이리 씰룩, 저리 씰룩거립니다.

    한바탕 도토리 잔치를 마친 멧돼지 가족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발차기 하느라 힘을 쓴 주주가 도토리나무 가지 위에 앉아 숨을 고르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억울하지 않으세요? 도토리를 아무리 많이 줘도 다람쥐 형들이나 멧돼지 가족은 아저씨한테 아무것도 안 주잖아요.”

    도토리나무는 불어오는 늦가을 바람에 잎사귀를 떨구며 부드럽게 미소 짓습니다.

    “난 숲속 친구들이 내 도토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단다. 곧 겨울이 오면 어떤 친구들은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고, 또 다른 친구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를 향해 먼 길을 떠나야만 해. 그러려면 지금 많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숲에 먹을 것이 줄어들어서 걱정이구나. 그래서 내 도토리를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란다. 주주도 네 것을 나누어주면 결국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려무나.”

    도토리나무의 말을 주주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 것을 남한테 주면 없어지는 것 아닌가? 어떻게 더 많아질 수 있지?’

    주주는 도토리나무 아저씨가 혹시 계산을 못하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점잖고 상냥한 말투로 당부하는 도토리나무와 인사를 나눈 주주는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날아가고, 이제 도토리나무만 홀로 남았습니다. 서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던 도토리나무가 남은 열매와 잎사귀를 헤아려봅니다. 매일 밤 헤아리는 숫자가 줄어들수록 도토리나무의 마음은 어떤 설렘으로 가득 찹니다. ‘새 열매’를 맺을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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