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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신데렐라가 된 혜리 上

2020.07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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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서 착한 신데렐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책을 읽던 혜리는 책을 확 덮어버렸어요.

    “치! 백설공주, 인어 공주, 엄지 공주, 신데렐라…. 역시 공주는 착하고 예쁘구나. 그렇지, 예쁘고 착하면 다 공주지, 흥!”

    책꽂이에 꽂힌 동화책을 쭉 훑어보며 중얼거리던 혜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았어요. 그러고는 작은 손으로 왼쪽 뺨을 가리며 말했어요.

    “이것만 없으면 좋겠다.”

    혜리가 가린 것은 하얀 얼굴 때문에 도드라져 보이는 불긋한 화상 자국이에요. 어릴 때 사고로 얼굴과 어깨에 화상을 입었거든요. 지금은 흉터가 많이 옅어졌지만 일곱 살 혜리에게는 아주 심각한 고민거리였어요.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들어왔어요.

    “혜리, 이제 자야지.”

    엄마는 혜리를 침대에 눕히고 신데렐라가 그려진 푹신한 이불을 덮어주었어요.

    “엄마, 신데렐라!”

    혜리가 책상에 놓인 책을 가리켰어요.

    “또? 신데렐라는 어제도 읽고 엊그제도 읽었는데?”

    혜리가 이불로 얼굴을 반쯤 덮고는 환하게 웃었어요.

    “나는… 신데렐라가 제일 좋아!”

    “우리 딸, 신데렐라가 왜 그렇게 좋아?”

    엄마는 요즘 신데렐라에 푹 빠져서 부쩍 외모에 신경 쓰는 혜리를 보며 물었어요.

    “음… 신데렐라는 얼굴도 예쁘고, 나중에 엄청 크고 아름다운 왕궁에서 살잖아.”

    혜리는 정말로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어요.

    “엄마 눈에는 혜리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인데.”

    “피, 이렇게 해야 진짜 예쁘지!”

    혜리는 화상 자국을 가리며 말했어요.

    “아니야, 엄마한테는 혜리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님이야.”

    혜리는 엄마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엄마 눈’에만 공주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빨리 읽어줘.”

    혜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엄마는 책을 펴서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갔어요.

    “신데렐라의 어머니는 신데렐라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아빠는 새어머니와 두 딸을 데려왔어요. 새어머니와 두 딸은 아빠 몰래 신데렐라를 몹시 괴롭혔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
    혜리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점점 꿈나라로 빠져들었어요. 그때였어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났어요. 놀란 혜리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누… 누구세요?”

    “혜리 양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온 천사랍니다.”

    “처… 천사요? 제 소원을 들어준다고요?”

    “그럼요. 뭐든 말해보세요.”

    “와!”

    혜리는 너무나 기뻤어요. 마치 꿈만 같았죠.

    “제 소원은…, 신데렐라가 되는 거예요. 동화에 나오는 예쁜 신데렐라요. 저 신데렐라 되게 해주세요!”

    혜리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눈빛으로 천사를 바라봤어요.

    “자,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되게 해줄게요.”

    천사가 커다란 날개로 혜리를 감싸자 침대에 있던 혜리가 사라졌어요.

    ‘어… 여기가 어디지?’

    혜리는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한기를 느껴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거미줄이 쳐진 천장에 둥근 창문, 벽난로…. 혜리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어요. 여기는 바로 동화 속 신데렐라의 방이었어요. 일어나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던 혜리는 벽에 걸린 거울 앞에 섰어요.

    “와! 내가 신데렐라가 됐어! 어떡해!”

    혜리는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어요. 왼쪽 뺨의 흉터도 감쪽같이 없어졌어요.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얼굴, 아니 동화보다 더 예쁜 신데렐라가 되어 너무 행복했어요. 비록 누더기 옷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너무 행복해서 자꾸 웃음이 났어요. 그때였어요.

    쾅쾅쾅!

    “신데렐라! 신데렐라!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자는 거니? 얼른 내려와서 아침 차리지 못해!”

    새엄마의 목소리였어요.

    “네, 엄마! 지금 내려갈게요.”

    신데렐라가 된 혜리는 얼른 주방으로 내려갔어요.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주방에서 허둥대고 있을 때, 뒤에서 화가 잔뜩 난 목소리가 들렸어요.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잖아. 얼른 빵이랑 수프 가져와. 그리고 청소도 해!”

    동화책에서 보던 둘째 언니였어요.

    하루 종일 청소하고 빨래에 설거지까지. 혜리는 힘들었지만 참을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예쁜 모습이 너무 만족스러웠고, 얼마 안 있으면 신나는 파티에 갈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던 혜리가 하루는 1층에서 새엄마와 두 언니의 대화를 듣게 되었어요.

    “호호, 이번 파티에서 왕자님이 신붓감을 찾는다고 하는구나.”

    혜리는 상상했어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크고 웅장한 성에서 멋진 왕자님과 결혼하는 모습을요. 혜리는 심장이 터질 듯 기뻤어요. 혜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새엄마와 언니들의 대화를 좀 더 들어보았어요.

    “정말이에요? 나야말로 왕자님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죠!”

    둘째 언니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며 자신 있게 말했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바로 왕자님 신붓감이지!”

    “당연하지, 누구 딸들인데! 우리 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될걸?”

    “호호호.”

    새엄마와 언니들의 웃음소리가 온 집 안에 가득했어요. 그 대화를 듣고 있던 혜리는 갑자기 슬퍼졌어요. 언니들을 예쁘다고 하는 새엄마의 말이 혜리의 귓가에서 맴돌았거든요.

    엄마 눈에 가장 예쁜 공주….

    혜리는 잊고 있었던 엄마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어요.

    ‘맞아. 엄마!’

    그동안 혜리는 엄마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공주가 된다는 기쁨에 엄마를 까맣게 잊었던 거예요. 혜리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예쁘다며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 엄마가 이곳에는 없었거든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여기는 엄마가 없는데…. 힝!’

    혜리는 슬펐어요. 아무리 얼굴이 예뻐져도, 아름다운 성에 살아도 엄마는 없을 테니까요. 그날 이후 혜리는 밤마다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하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결심했어요.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엄마는 잠시 잊자. 백설공주도 신데렐라도 엄마가 없어도 나중에는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으니까…. 나도 행복해질 거야.’

    혜리는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공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