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어르신 댁을 방문했습니다. 과일을 가지고 가서 차와 함께 마시며 말동무를 해드렸습니다. 어르신의 싱크대 선반에 아주 오래된 플라스틱 반찬통이 눈에 띄었습니다. 꽃무늬가 그려진 빛바랜 반찬통을 보니 어릴 적 추억이 물결치며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저는 비쩍 마르고 늘 어지럼증을 느껴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엄마는 허약한 제가 안타까워 비싼 꿀도 먹이시고 보름달 빵을 사 먹으라고 한번씩 동전으로 용돈을 주셨습니다. 저는 어버이날에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어 빵을 안 사 먹고 아껴뒀다가 꽃을 사다 드렸습니다. 엄마는 이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빵을 사 먹지 않고 헛돈을 썼다고 야단치셨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당신보다 딸을 더 아끼시기에 그런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그다음 해부터는 카네이션을 사지 않았습니다. 어버이날이 돌아오자 색종이로 꽃을 만들어 달아드리고 엄마를 위해 산 반찬통을 선물했습니다. 엄마는 돈이 어디서 나서 반찬통을 샀냐고 나무라셨습니다. 카네이션을 드렸을 때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내기하는 날에 품앗이를 하러 온 동네 어른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며 제게 선물받은 반찬통을 자랑하셨습니다.
이듬해 어버이날, 저는 그보다 훨씬 큰 반찬통을 선물해 드렸습니다. 엄마는 큰 반찬통을 받으시고 한동안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통에 물김치를 담아 두었다가 마당 화덕에 솥을 걸고 팥죽을 쑤어 이웃분들을 부른 후 반찬통에서 물김치를 꺼내 대접하며 또 김치통을 자랑하셨습니다. “무슨 아이가 저 먹을 줄을 모르고 용돈만 주면 모아서 이렇게 선물을 사 온다”고 푸념 섞인 말씀을 하셨지만 실은 저를 자랑하는 소리였습니다.
반찬통은 햇빛이 닿으면 유난히 빛이 났습니다. 40여 년 전 그 시절에는 플라스틱도 귀했습니다.
돌아보면, 엄마를 생각하고 준비한 선물이었지만 반찬통은 엄마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쓰였습니다. 엄마에게는 엄마를 위한 삶이 없었듯이 어버이날 드린 선물조차 엄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기억이 제 가슴을 누릅니다. 햇빛에 그을린 엄마의 얼굴과, 나뭇결같이 거칠었던 손길과, 당신을 위한 삶은 하나도 없었던 엄마의 헌신이 보물처럼 저장된 그 반찬통은 지금도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