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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족의 힘

2025.0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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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고! 이게 무신 일이고?”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여는데 방 안에서 엄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와 쌍둥이 언니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방으로 달려갔다. 평소라면 엄마가 일을 갔을 시간이라 엄마가 집에 계시는 게 그저 반가웠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

    우리 자매는 들어가다 우뚝 멈춰 섰다. 방 안에는 엄마만 계신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중앙에 누웠고 낯선 아저씨가 옆에 앉아 계셨다. 엄마는 피가 흐르는 아버지의 다리를 수건으로 연신 닦았다.

    “이게 대체 무신 일이라예?”

    엄마가 울먹이면서 묻자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서 씨가 길 가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아인교! 병원에 가자고 해도 손사래를 치면서 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 내가 여기까지 업고 왔다 아인교. 근데 얼른 병원 가야 할낀데.”

    엄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승희 아부지, 병원 갑시다. 이래가지고 안 돼요!”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병원은 무신! 병원 가면 돈이 을마나 많이 드는데! 나는 괜찮어. 며칠 이렇게 누워 있으면 돼.”

    “괜찮긴 뭐가 괜찮어! 서 씨 이러다 큰일 나! 얼른 병원 갑시다!”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면서 재촉했지만 아버지는 꼼짝달싹도 안 했다. 우리 자매는 옆에 조용히 앉아 걱정스럽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숨죽여 들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집에서 며칠 동안 누워만 계셨다. 단칸방이라 아버지의 끙끙거리는 신음이 밤낮으로 들려왔다. 보다 못한 엄마가 작은아버지에게 전화했고, 작은아버지가 온 후에야 아버지는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

    “아무래도 승희 아부지가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더. 허리가 마비됐다고 하네예.”

    엄마의 통화를 옆에서 듣던 우리도 “수술이라니, 아버지가 얼마나 안 좋으신 걸까?” 하고 걱정했다. 통화를 마친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아부지가 많이 아프신 거예요?”

    큰언니가 엄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언니는 우리보다 두 살 많은 5학년이었다.

    “그래. 수술하고 나믄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데 엄마가 회사를 뺄 수가 없으니 걱정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부탁할 만한 사람도 없고.”

    엄마가 다시 한숨을 쉬자 큰언니가 말했다.

    “엄마, 무슨 걱정이에요? 우리 세 자매가 있는데. 우리가 할게요. 너희들도 아버지 간호할 수 있지?”

    큰언니의 말에 우리도 쪼르르 엄마 옆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 다 할 수 있어요! 엄마는 걱정하지 마시고 회사에 가세요.”

    다행히 겨울 방학이 시작되어 학교를 안 가도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 니들은 아직 너무 어려. 엄마가 어떻게든 해볼 거니깐 니들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이후 엄마는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간병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하루하루 벌어서 겨우 먹고살던 시절이다 보니 엄마는 일을 쉴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세 자매는 엄마에게 다시 말했다.

    “우리가 아버지 병간호할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일 가세요. 제발요.”

    우리들의 간절한 모습에 엄마는 체념하듯 승낙했고, 그때부터 우리 세 자매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큰언니가 먼저 병원에 가면 그다음 날엔 우리 쌍둥이 자매가 아버지를 간호했다. 휴일에는 엄마가 아버지를 돌봤다.

    “아이고, 딸내미들이 참 기특하데이. 아부지 병간호도 다 해주고 뉘 집 자식인지 참 잘 키웠데이.”

    미소 지으며 칭찬하는 간호사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예. 우리 딸들이 참 효녀라예.”

    아버지가 계신 병실은 1인실이라 우리 자매들이 병간호하기에 참 편했다. 병실 앞쪽에 조그마한 식당이 있었지만 병원이 작아서인지 식사는 우리가 직접 해결해야 했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버지 밥을 챙겨드렸다. 아버지의 식사가 끝나면 언니와 나는 병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겨울 방학 숙제를 했다. 병실 바닥에 누워 있으니 참 따뜻하고 좋았다.

    그동안 아버지는 항상 새벽에 나가서 일을 했고 어둑어둑 해가 지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그리워했다. 이렇게나마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아버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했다. 나와 쌍둥이 언니는 빨래를 하고 큰언니는 우리의 끼니를 챙겼다. 엄마가 병원에 가고 없는 휴일,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이라곤 김치밖에 없었다. 나는 냉장고 문을 닫으며 큰언니에게 말했다.

    “언니야! 점심으로 라면 끓여주면 안 돼? 라면 먹고 싶어.”

    “라면? 집에 라면이 있을까? 찾아볼게.”

    대답을 마친 언니가 부엌으로 나가 찬장을 열어보더니 라면을 가지고 왔다.

    “라면이 두 개 남아 있네. 이거 끓여줄게.”

    큰언니는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성냥으로 곤로에 불을 붙였다. 보글보글 라면 끓는 소리가 참 맛있게 들려왔다. 엄마가 안 계시니 큰언니가 엄마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들은 함께 아버지를 간병하며 서로를 돕고 의지했다. 아버지는 한 달 정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했다.

    “우리 딸들, 고맙데이.”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우리 세 자매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 이제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 이야기다. 그때를 돌아보니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나의 가족들이 떠오른다. 영원한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열심 내는 하늘 가족들. 서로 힘이 되어주고 응원해 주면서 천국 길을 언제나 함께 걸어가기를. 아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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