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맞이하며, 생명강가에 자라나는 생명나무처럼 달마다 영적 결실을 거두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얼마 뒤 케냐로 와서도 계속 목표를 상기하며 달음질하다 보니 지난 한 해 목표보다 많은 26명의 소중한 형제자매를 찾았습니다.
재작년의 제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매우 놀랄 것입니다. 당시 부푼 마음을 안고 첫 단기선교로 케냐에 왔던 저는 직접 마주한 현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거든요. 아무리 아프리카라도 시온은 한국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함께하는 식구들, 넓은 성전, 교회에 비치된 넉넉한 물품 등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케냐에서는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본 짙푸른 대자연이 아니라 목이 아파오는 매캐한 공기와 뜨거운 햇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3주간의 선교를 마치며, 전 세계에 아직 찾지 못한 하늘 가족이 정말 많고, 현지 시온에 꾸준한 도움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한 명이라도 시온의 기둥이 될 든든한 복음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현지에서 차근차근 복음을 일궈나가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머리로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장기간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괜히 짐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을 빙자한 핑계를 대며 해외 복음의 길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본 영상물 속 한마디가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가고 싶은 길과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가야 할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앞에 확실한 축복을 예비하셨는데 두려워하고 주춤거렸던 지난날이 죄송스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새벽이슬 청년으로서 천국 복음 완성에 헌신하리라 다짐하며 다시 아프리카로 날아갔습니다. 장차 케냐 복음에 쓰임받을 일꾼을 반드시 찾겠다는 일념으로요.
처음 2주는 함께 출국한 단기선교단과 활동하며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단기선교단은 뜨겁게 진리를 전해 짧은 기간 28명의 하늘 가족을 찾고 돌아갔습니다. 케냐에서의 제 여정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엠바카시 지교회 식구들은 대부분 진리를 영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레 제 모든 행동이 식구들에게 신앙생활의 가이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예배, 기도, 전도, 봉사 어느 부분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식구들에게 제 복음 목표를 공유하고, 이를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열과 성을 다해 전도했습니다. 힘든 일은 되도록 피하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궂은일마다 앞장서게 되더라고요.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건강과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느슨해지면 뒤따르는 식구들의 믿음이 자라지 않을 거란 생각에 무릎을 일으켰습니다. 새 식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다른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생애가 어땠을지 그려졌습니다. 한 자녀를 살리시려 하루하루 정성을 쏟으셨을 아버지, 우리를 위해 지금까지 사랑의 본을 보여주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죄송하고 감사해 눈물이 흘렀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떠올리면 고난과 시련이 다가와도 “그래,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무슨 일이 생기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식구들을 보면서도 ‘저 식구가 꾸준히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을까’, ‘복음의 일꾼으로 자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초조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믿고 응원해 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며 좋은 면만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정한 복장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자원해서 성전을 청소하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도와줄까요?”라며 다가오는 식구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식구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했다는 사실을요. 이미 식구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는데 제가 사랑의 눈을 갖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니 전도할 때의 마음가짐도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진리를 전해도 무조건 반박하거나 좋지 않은 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만나면 화도 나고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뒤로는 “나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핍박할 때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장 10~12절) 하신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장차 하늘에서 어떤 상을 받을지 상상하며 더욱 즐겁게 전도하는 동안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하늘 가족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이본 자매님입니다. 자매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커 보였습니다. 바로 시온으로 초대해 진리를 더 알리려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당시 자매님이 휴대폰이 없어서 저희는 교회 위치를 알려주고 만날 시간을 정했습니다. 다음 날,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도 자매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못 만나겠구나 싶어 교회를 나서려는데 자매님이 언니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은 성경 말씀을 더 살핀 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후 자매님은 시간이 될 때마다 시온에 와서 성경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배운 내용을 토대로 친구와 이웃 등 만나는 이마다 진리를 전해 시온으로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한창 믿음을 키울 무렵, 자매님이 고향에 가서 오랜 기간 머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케냐는 워낙 땅이 넓고 아직 시온이 없는 지역이 많아 고향에 다녀온 분들이 시온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매님은 떠나기 전, 고향에 있는 언니에게 스마트폰을 빌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꼭 지킬 거라고 저희를 안심시켰습니다.
몇 주 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습니다. 자매님이었습니다. 언니에게 휴대폰을 빌렸고 이미 모든 가족에게 진리를 전했다는 자매님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향에서 몇 달간 꾸준히 규례를 지킨 자매님은 예정보다 일찍 나이로비로 돌아와 전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깨달은 내용을 전하기 좋아하는 자매님이 큰 일꾼으로 자라나길 기도드립니다.
되돌아보면 출국 전 했던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감당치 못할 축복과 사랑을 받은 한 해였습니다. 모든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를 올리는 한편, 받은 축복에 비해 부족한 모습도 많이 보여 죄송했습니다. 남은 선교 기간,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그날까지 제 질주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가야 할 길이자 가고 싶은 길이며, 아버지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