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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울타리

엄마의 명소

2026.0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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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로 75세가 되신 엄마가 해외로 시집가서 사는 딸을 보러 먼 길을 오셨습니다. 비행기 안의 좁은 의자에 앉아 13시간을 오려니 어지간히 힘드셨나 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딸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반갑다’가 아니고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살아야 하느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딸을 보러 왔을 우리 엄마.

    예전에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남편과 같이 미국에서 한국의 친정집에 갔을 때 엄마는 대뜸 남편 성씨를 물어보셨습니다. 영어로 ‘Uchil(우칠)’이라고 하니 엄마는 “아, 우 씨(氏)야?”라고 되물었습니다. 제가 ‘우’가 아니라 ‘우칠’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엄마는 지금까지 늘 ‘우 서방’이라고 부릅니다.

    엄마가 저를 만나러 오려고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도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공항 검색대 직원이 가방에 물 같은 액체는 없느냐고 묻자 엄마는 자신 있게 그런 거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보안 검색대를 지나는 가방을 본 직원이 가방에 액체가 있다며 열어보라고 했습니다. 가방 안에서 나온 것은 1.5리터 통에 가득 든 참기름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형부가 난감해하며 “어머니, 가방에 액체 없다면서요?” 하고 물으니 엄마는 조금도 민망해하는 기색 없이 “맞아. 액체 없어. 참기름만 있지. 기름이랑 물은 완전 다른 거야” 하고 우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활기 넘치시던 엄마가 이제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십니다. 미국에 오니까 좋으시냐는 시온 식구들의 물음에도 “미국에 와서 좋은 게 아니라 딸을 볼 수 있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좋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도시가 따로 있어도 엄마에게는 딸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그 어느 나라, 도시보다 최고의 명소라는 것을요.

    우주에서 지구는 존재의 의미조차 희미할 만큼 작고 초라한 곳이지만, 하늘 어머니께서는 오로지 자녀들 때문에 이곳 도피성 지구에 오셨습니다. 얼마나 고단한 여정인지, 얼마나 외롭고 먼 길인지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애틋한 사랑이 오늘이 먼 땅에서도 아주 가깝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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