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에는 어릴 적 향수가 녹아 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가난한 살림살이에 과자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이라 밭농사로 거둬들인 감자, 고구마가 사 남매의 주된 군것질거리였다.
간식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낸 부침개가 단연 최고였다. 고소한 기름과 밀가루가 어우러진 부침개는 그 재료가 무엇이 되었든 환상적인 맛을 냈다. 봄철 지천에 자라는 쑥이나 텃밭에서 나는 채소는 부침개의 훌륭한 재료였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는 마루에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비닐을 치고 곤로(석유나 전기 등을 이용하는 취사용 도구)를 가져다가 부침개를 부쳐주곤 하셨다.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온 집에 풍겼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지면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서 부침개를 부쳐 먹는다. 얼마 전에는 지인을 만나러 가면서 김치 부침개를 몇 장 만들었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부침개를 먹으며 지인은 참 행복해했다.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던 부침개는 이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작은 선물이 되었다. 비 오는 아침, 나는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두른다. 오늘은 누구에게 행복을 선물해 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