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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선수와 코치

2025.0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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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한 딸은 유년기를 태권도와 함께 보냈습니다. 지난해, 몇 년 만에 태권도 대회가 현장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에 딸아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라며 흔쾌히 딸아이의 출전을 허락했는데 발차기나 품새 종목이 아닌 겨루기에 나간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 혹시나 다른 선수에게 맞고 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그날 밤부터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딸아이는 저녁마다 한두 시간씩 꾸준히 운동하며 긴 생머리가 흠뻑 젖을 만큼 땀을 흘리고 귀가하기 일쑤였습니다. 가벼운 경험 정도로 생각했던 저도 묵직한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듯한 기분으로, 진지하게 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대회 당일, 주차장에는 차들이 꽉 들어찼고 경기장 안도 선수들을 응원하러 온 가족과 친구들, 각 태권도장 관장과 사범들로 가득했습니다. 저도 딸에게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싶어서 선수 대기실로 향했습니다. 문틈으로 머리를 밀어넣어 두 명씩 열을 맞춰 앉아 있는 선수들 틈에서 동그랗고 뽀얀 얼굴을 찾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손을 흔들어도 살짝 고개만 까딱하는 아이의 낯선 모습에서 첫 시합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관중석으로 올라오는데 갑자기 체육관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느껴져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딸아이는 얼마나 떨릴까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이 무거운 공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지, 빈속이 편하다며 밥도 거르고 갔는데 경기가 계속 뒤로 밀려 배고프지는 않을지 하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드디어 딸아이의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머리·몸통보호대를 착용하고 마우스피스까지 문 딸아이를 보니 사자 우리에 아기를 내놓은 듯 불안했습니다. 출전 경험이 많아 보이는 상대 선수는 초반부터 맹렬하게 몰아붙였습니다. 딸아이는 몸이 굳었는지 좀처럼 공격에 나서지 못하고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에 다시 경기장 가운데로 나아오기를 반복한 끝에 1차전을 판정패로 마무리했습니다.

    잠깐의 휴식시간, 경기장 모퉁이에 있던 관장님이 딸아이를 부르더니 눈을 마주보며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호흡을 가라앉히도록 도와주며 수건을 건네고 물을 가져와서 마시게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딸아이는 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몇 차례나 크게 끄덕이더니 다시 매트 위에 섰습니다.

    2차전 시작부터 점수를 내주던 딸아이는 이내 경기 흐름에 적응한 듯 한 점씩 따라잡으며 공격에 나섰습니다. 코너에서 큰 소리로 공격 포인트를 알려주는 관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1차전보다 안정된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다가 결정적인 공격으로 3점을 따냈습니다.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박수 치며 응원하던 관장님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순간순간의 작전을 알려주고 흐름을 읽어주는 이들을 보니, 조력자들의 역할이 참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이 발갛게 익은 딸아이는 용기 내어 공격을 시도하는 횟수가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적응하는 아이가 대견하고, 팽팽한 현장 분위기에서 혼자 힘으로 상대 선수와 겨루며 배우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2차전을 이기고 3차전을 기다리는 동안 저도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차례를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하는 아이, 긴장감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아이…. 어린 선수들은 각자에게 닥친 경기에 집중하며 눈앞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관중석에 앉아 응원하는 부모의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배나 등, 머리를 가격당해 실점할 때마다 혹여나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차라리 경기장에 내려가 대신 뛰고 싶은, 저와 같은 심정이었겠지요.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해 뛰는 딸을 바라보다 늘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고통과 수고로움보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다치는 자녀를 마주할 때 더 마음 아파하시고 걱정하시는 하늘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봅니다.

    하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이 힘들고 아프게 느껴지더라도 그 모든 순간 저와 같이하며 끝내 이겨내길 기도해 주시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심에 감사합니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하늘 형제자매들과 함께 천국 복음 완성을 위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뎌, 우리를 응원하시는 하늘 부모님께 미소를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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