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장마철을 앞두고 부평구 일대 시온 가족들이 연합해 빗물 배수구 정비에 나섰습니다. 저지대에 있는 주택 밀집 지역으로, 2년 전 침수 피해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듬해 시온 식구들이 배수구를 정비하고서 장마를 무사히 넘겼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봉사에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식구들은 배수구의 철망을 일일이 열고 배수구에 쌓인 토사와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 잡초 등을 말끔히 치웠습니다. 사실 한 동네에 수십 년을 살아도 눈여겨보지 않는 이상 배수구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 두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이웃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 가득한 식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시온 식구들의 한결같은 봉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주위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수십 년 전부터 이어졌습니다. 저도 진리를 영접하기 전, 식구들의 사랑에 온기와 힘을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95년 여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은 제가 몸담은 해병대전우회에서 행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한창 행사를 준비하던 저녁 시간, 인근 지역 전우회에서 무전이 왔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져 지원이 시급하다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기에 저와 회원 여남은 명은 가서 도와주고 오자며 길을 나섰습니다.
사고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생존자들을 업어 도롯가에 내려다 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곧이어 붕괴된 건물 지하까지 내려갔습니다. 아직 정부 당국 차원의 본격적인 구조가 진행되기 전이었으나 상황이 급박해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구조를 위해서는 잔해를 치우는 게 급선무였기에 통로를 가로막는 콘크리트 더미를 깨부수며 생존자를 수색했습니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지하공간에서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맨손으로 돌을 옮겨가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3~4일쯤 지났을 때 공구가 망가졌습니다.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할 수 없어 현장에서 막내였던 제가 공구를 수리하러 지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공구를 맡기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봉사자와 유가족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부스가 보였습니다. 구조작업에 투입된 뒤로 건물 지하의 무너진 매장에서 구한 빵으로 겨우 배를 채운지라 음식 냄새가 위장을 자극했습니다. 밥때가 지났는지 식사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봉사자들은 저를 보고 뜨끈한 육개장을 그릇에 담아주었습니다. 얼큰한 국물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 다들 밤잠도 못 자고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던 때, 현장까지 달려와 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구조대원들을 챙기는 정성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온기와 육개장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이후 지하까지 국밥을 비롯한 음식이 전달돼 동료들도 든든하게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그 밥을 먹고 힘을 내서 구조작업을 이어갔던 풍경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아내를 통해 진리를 영접하고 나서야 그 급식 부스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준비하고 운영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당시 봉사자들의 따뜻한 사랑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도 깨달았습니다. 모든 자녀를 두루 살피고 보듬는 어머니의 사랑. 시온 가족들이 이웃과 사회를 돌아보며 도움이 꼭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 펼치는 봉사의 근원은 바로 그 사랑이었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매년 시온 식구들과 여러 가지 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이웃을 돕고,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나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두루 살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앞으로도 형제자매와 연합해 봉사로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