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Menu

에피소드

[특집] 빨래터

2024.12470
  • 글자 크기



  • 어릴 적, 빨래터는 동네 소식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있던,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가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사람들은 뒷산 아래 개울가에서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아이들 목욕을 시키기도 했지요. 빨래하는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동네 소식들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고 흥미진진했던지 저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 엄마 따라 빨래터에 자주 갔습니다.

    겨울에는 물이 꽁꽁 얼어 빨래터에 인적이 끊깁니다. 엄마는 겨울에도 저희 육 남매가 벗어놓은 빨랫감을 들고 휑한 빨래터를 찾았습니다. 추우니까 따라오지 말라는 엄마 말에도 저는 빨래터에 따라가 얼음 썰매를 타곤 했습니다. 제가 썰매 타고 놀 때 얼음을 망치로 깨면서, 발갛게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빨래하던 엄마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희 남매가 겨울에도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동상에 걸릴 만큼 차가운 얼음물에 손을 담갔던 엄마의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아련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제는 연로해 한 손에 지팡이를 짚은 엄마를 모시고 빨래터를 찾았습니다. 빨래터는 그 시절의 풍경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만큼 변해버렸습니다. 당시 엄마와의 추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빨래터만큼이나 엄마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마디마디에 생긴 주름, 거뭇거뭇한 검버섯, 활처럼 휘어버린 허리…. 육 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영광의 훈장이 엄마의 황혼을 장식합니다.
    더 보기
    뒤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