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십여 분 나가면 작고 예쁜 박물관이 나옵니다. 박물관 앞의 넓은 정원 언덕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서로 붙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그 은행나무들은 하늘에 닿을 듯 키도 크고 웅장합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은행나무가 반짝거리는 광경을 바라보면 행복이 샘솟습니다. 특히 붉게 노을 질 즈음, 노란 은행잎이 차가워진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지난가을에도 은행나무가 그릴 절경을 기다렸습니다. 언덕 밑 새로 생긴 카페에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 나무가 노랗게 물들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듭 말했습니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는데 초록 잎이 여전했습니다. 아직 날씨가 덜 추워서 그런 것이라 짐작하면서 언젠가 당연히 노래질 거라 여겼습니다. 어느 날 한파가 닥치고 매서운 바람이 불자 은행잎은 끝내 초록색인 채로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단풍이 드는 이유는 가을철에 기온이 낮아지고 일조량이 부족해져 영양과 수분이 잎까지 공급되지 않아 엽록소가 파괴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늦가을에 들어서도 기온이 따뜻하고 일교차가 적었던 작년에는 잎에 영양과 수분이 충만해서 초록색 잎을 유지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한파에 잎을 모두 떨군 것입니다. 가을이면 당연히 볼 수 있다고 여겼던 울긋불긋한 단풍은, 태양과 바람과 나무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하나도 당연한 게 없구나 싶다가 문득 친정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아빠, 저, 동생을 위해 때마다 모두의 입맛을 고려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철이 들면서 그동안 식탁에 올라온 음식이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각자 선호하는 메뉴가 달라 엄마는 직접 요리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 수 없었지요. 당연하게 여겼던 한 끼 식사에는 자신의 취향보다 온전히 가족을 생각하는 엄마의 노력과 희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는 이 세상도, 저라는 존재도 당연히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엘로힘 하나님을 만난 지금은 분명히 깨닫습니다. 하늘에서 크나큰 죄를 지은 자녀들에게 회개의 시간을 허락하시려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지구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물, 공기, 흙, 햇빛을 비롯한 만물을 허락하셨다는 것을요.
지금 이 순간도 자녀들이 하늘 본향을 소망하도록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늘 부모님이 계시기에 저와 이 세상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감사하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자, 유일하게 ‘당연한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