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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 늙지 마

2024.06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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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일요일 저녁,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 준비물 챙기는 것을 도왔다. 알림장에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사진을 몇 장 챙겨오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들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 보는데, 아들이 갓 태어난 자기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나야? 왜 이렇게 빨개?”

    “엄마 배 속에 있다가 막 나왔을 때라서 그래.”

    “아기가 나올 때 엄마가 많이 아파?”

    “아빠도 남자라 겪어보진 않았지만, 아기를 낳는 건 무척 아프고 힘들대. 피도 나고.”

    피가 난다는 말이 무서웠는지, 자신의 핏덩이일 적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들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분위기를 바꾸려 서둘러 사진을 넘겼다. 아들의 시선이 아내의 배부른 모습에 꽂혔다.

    “엄마 배가 이렇게 컸어?”

    “응, 네가 태어나기 전날 사진이야.”

    “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아기가 생기면 엄마의 내장들이 다 위로 올라가서 엄청 힘들대.”

    “그래? 우리 아들 그런 것도 알아?”

    아들의 얼굴이 다시 심각해졌다. 사진을 휙휙 넘기다 보니 신혼 초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와, 엄마 이쁘다! 이 사진은 내가 몇 살 때야?”

    “이건 네가 엄마 배 속에 생기기도 전이지. 아빠 엄마가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일 거야.”

    “나 태어나기 전이야? 아빠는 날씬하고 엄마는 이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구경하던 중 아내가 저녁 먹으러 나오라고 불렀다. 아들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달려가 엄마를 부둥켜안았다.

    “엄마, 내가 엄마 아프게 하고 늙게 해서 미안해.”

    “아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네가 무사히 태어나줘서,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워.”

    “난 엄마가 더 늙을까 봐 걱정돼. 엄마, 늙지 마.”

    엄마를 염려하는 아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모자간의 대화를 흐뭇하게 듣다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아빠 생각에는, 이제부터 엄마 말 잘 들으면 엄마가 더 안 늙을 것 같은데?”

    “응, 나도 알아. 그럴 거야.”

    마음이 놓였는지 엄마를 안았던 팔을 풀고 식탁에 앉은 아들의 안색이 밝았다. 그런데 흥얼거리며 숟가락을 든 아들이 이내 투덜거렸다.

    “엄마, 나 이 반찬 싫어. 김이랑 먹을래.”

    “아들, 좀 전에….”

    내가 한마디 하려고 하자 아내가 식탁 아래로 내 다리를 툭 치며 막았다. 아내는 미소를 띤 채 두 손으로 아들 얼굴을 감쌌다.

    “그래. 김도 먹고 이것도 먹자.”

    저녁을 먹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게는 아들을 나무랄 자격이 없었다. 나도 영적으로 다를 바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하늘 어머니의 희생을 바라보며 죄송해하다가도 어느새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다시 내 불편과 아픔을 토로하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반복해 왔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건강히 자란 것만으로도, 당신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며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오늘도 자녀 위해 고통을 참으시고 또 하루를 버티시는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짐한다.

    ‘아버지 어머니 말씀 잘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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