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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들의 졸업식을 다녀오며

2024.0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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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아들 대학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아들의 자취방을 옮겼습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 짐을 싣고 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 새집에 아침 7시쯤 도착했습니다. 짐 옮기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들이 만류했지만 남편은 할 일이 많다며 발소리를 죽이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까지 또 짐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아들도 조심조심 남편을 도왔습니다.

    장시간 운전하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짐 나르기를 마친 남편은 잠깐 눈 붙일 새도 없이 곧바로 도배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저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주방, 화장실, 냉장고, 창틀 등 구석구석을 청소했습니다. 아들은 점점 깨끗해지는 집을 감탄의 눈빛으로 보았습니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타지에서 혼자 좁은 고시원과 원룸에 살면서도 원망 없이 견뎌준 아들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자주 와보지 못한 미안함을 이렇게라도 만회해 보려는 부모의 마음을 아들이 알까요? 알아주지 않더라도 부모로서 해줄 것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집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아들은 예전부터 아빠 흰머리를 염색해 드리고 싶었다며 예약해 둔 미용실로 남편을 끌고 갔습니다. ‘염색을 하면 옻이 오른다’, ‘머리가 아프다’며 핑계를 대던 남편도 이번만큼은 아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하얗던 머리가 감쪽같이 까만 머리로 변신해 몇 년은 젊어 보였습니다.

    그날 저녁, 지방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작은아들이 형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밤 기차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인 것이 얼마 만인지….

    졸업식 날 아침, 눈 덮인 캠퍼스에는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이 가족들과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습니다. 우리 집 사진사를 자처한 작은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 고민하며 오늘의 주인공인 형의 모습을 멋지게 남기려 애썼습니다. 찍히는 큰아들이나 찍는 작은아들, 둘을 바라보는 남편과 저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졸업식 후 작은아들이 점심을 사겠다며 친구가 요리사로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평소 경양식을 즐기지 않는 남편이었지만 이날은 두 아들이 아빠의 접시에 음식도 덜어주고 우스갯소리도 하는 등 한껏 애교를 부려서인지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축, 졸업!’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작은 케이크가 나왔습니다. 작은아들이 친구에게 미리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식사도 맛있었는데 형을 위한 작은아들의 마음이 담긴 축하 케이크는 더 맛있었습니다.

    ‘졸업식’과 ‘이사’라는 큰일을 치르느라 몸은 피곤해도 마음만은 참 행복했습니다. 자기 일은 알아서 하는 큰아들이 듬직하고, 형을 챙기는 둘째도 기특했습니다.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는 저의 말에 평소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던 남편이 한마디 했습니다.

    “이제 보니 애들이 많이 컸네.”

    하늘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려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서로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면 얼마나 흐뭇하실까요. 하늘 어머니께서 자녀들을 칭찬하실 때 하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제 정말 장성한 믿음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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